인터넷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박대성이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는 소식입니다.

내심 미네르바 박이 계속 감옥에 있어주길 바라던 사람들로서는 살짝 허탈한 판결이 아닐까싶은데요. 그동안 재판부를 성토하며 '미네르바에 대한 유죄선고'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해온 김태동 교수와 아고라의 일부 철부지들로서는 특히 심적 타격이 클 것같습니다. 유영현 판사한테 제대로 한 방 맞은 셈이니요.

무튼, 이에 대해서는 일 마치고 나서 썰을 함 풀어볼까 합니다.
제목은 '미네르바 무죄선고와 게임의 법칙' 정도가 되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미네르바 박대성씨, 고생했어요.


미네르바
 
미네르바

미네르바 무죄선고가 의미하는 것은?




 
2009/04/20 14:22 2009/04/20 14:22

"한두 번 선거에 패배했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 옳은 주장을 해도 그 주체가 선거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 졌다고 해서 역사의 역할이 틀린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방선거 참패 뒤인 2일 정책홍보토론회에서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의 선거 참패를 거론하며 했다는 말이다. 맞다. 선거에 패했다고 해서 역사적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 나라의 제도, 의식, 문화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역시 같은 자리서 노무현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국민 누구도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부정할 국민은 노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없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를테면 '모든 국민은 행복해야 한다'거나 '분단된 조국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당연한 말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고, 국민 모두가 동의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도대체 이같은 주장의 당위성을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마치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국민 일반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서 절망하는 것은 이같은 발언에 있지 않다. 국민 일반이 절망하는 것은 그 발언이 나온 맥락, 곧 노무현 대통령이 한사코 외면하면서, 교묘한 수사로 말장난을 일삼고 있는, 사실을 오도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다.
 

6월 6일 한겨레 그림판


노무현 대통령 발언의 맥락에서 읽히는 것은 그의 부박한 역사인식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한갓된 역사주의'다. 이른바 "역사가 나를 평가하리라"는 나이브한 수준의 역사인식이다(노 대통령이 왜 이같은 인식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하기로 한다). 반성적 성찰이 배제된 '무오류의 환상'이 시작되는 지점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아집과 독선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이같은 역사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낸 바 있다.

"국민들에게 꼭 지금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가. 옳은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 알아줄 날이 올 것이다."


'여론만 좇다가는 민심을 놓친다'면서 노 대통령이 한 말이다. 당시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을 전하면서 "언젠가 민심이 노 대통령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무현과 박정희, 그 같고도 다른 지점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떠오르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말이다.

박통이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의견을 물리치며 했다는 이 말은 표현상으로는 노 대통령의 발언과 흡사하다. 그러나 비슷한 듯 보이는 이 두 발언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미래에 대한 자기 확신과 비전이 읽힌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읽히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과 하소연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발언이 갖는 함의가 그러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아예 그같은 가능성조차를 차단해버린다. 마치 자신이 '무오류의 화신'이라도 된다는 투다. '과거에도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한갓된 역사주의'에 빠진 결과다.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계시는데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의 지도자와 독재시대의 문화에 빠져있다"는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의 망발(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2005년 8월26일 국민일보 서민호 만평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말을 듣다보면 그는 아직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듯만싶다. 그는 잘못을 지적하는 국민에 대해 자주 일반인 이상의 적의를 보인다. 마치 국민이 어거지로 자신을 무릎 꿇리기라도 한다는 투고, 거기에 죽어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노 대통령 자신의 피해의식일 뿐이다. 노 대통령을 무릎꿇리고 굴복시키고자 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그가 아직도 대학생 수준의 한갓된 역사주의에 사로잡힌 채 '역사가 나를 평가하리라'며 국민 일반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독선과 아집의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는 별유천지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한갓된 역사주의가 공고화되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독선과 아집이고, 그 독선과 아집이 권력과 결부되어 나타날 때 그것이 곧 독재권력이다. 권력이 자신의 실정에 대한 비판에는 귀를 막은 채 스스로를 평가하려는 데서 독재는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역사의 평가에 기대어 현실을 변명하거나 원망하기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다.   2006/06/07 05:00

 


<덧글> 며칠 전 밤에 쓰는 글의 문제점 (새 창으로 열기)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결국은 또 오밤중에 글을 썼네요. 거친 부분이 많으리라고 봅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2009/04/20 12:08 2009/04/20 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