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늘 날짜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는 글을 통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박연차 회장의 이야기가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며, 이에 대해 '방어'해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노무현의 참 민망하고 구차한 "해명과 방어"
앞선 글에서 나는 노 전 대통령이 거의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 승부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올린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갰습니다.
1. 권양숙 여사가 받은 돈은 정말 몰랐다.
2.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요청했다"는 박연차 회장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3. 최선을 다해 박연차 회장의 말이 거짓 진술임을 밝히겠다.
한마디로, 기업인의 돈을 받아 쓴 사실에 대해 도덕적 비난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대통령 재임시에 돈을 받고 거짓말을 한 파렴치한 범죄인으로는 남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입니다.
이제 결론은 하나입니다. 쓰레기만도 못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영원히 천하의 웃음꺼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검찰과의 한 판 승부에 성공하여 화려하게 재기의 날개를 펴게 될 것인가? 글의 허두에서 '노통이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말한 까닭입니다.
근데,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아무려면 노통이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을 시작했겠느냐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박연차 회장은 또 왜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저렇게 순순히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갖는 의미를 역으로 함 생각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법정 다툼을 통해 노통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검찰이 노통에게 덧씌우고 있는 모든 혐의는 정당성을 잃게 됩니다.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역전이 된다는 뜻입니다. 노통의 말 그대로 일정 부분 도덕적인 비난은 받을 수 있겠지만, 국민은 오히려 검찰 곧 현 정부에 비판과 분노의 화살을 돌릴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당연히 노통은 정권에 의해 탄압받는 전직 대통령의 이미지를 얻게 되고, 도덕적 비난 따위는 언제 있었느냐싶게 동정적 여론이 확산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통령의 부인이 돈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투명한 대통령의 이미지까지 더해진다면 그 동정의 정도는 상당한 폭발력까지를 갖게 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재기까지는 한 걸음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소설 '노무현과 박연차'
이쯤 되면 '소설 쓰지 말라'는 얘기가 나올 법합니다. 물론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노통이 첫 글을 올린 이후의 상황을 보면 꼭 소설이 아니어도 가능한 얘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노통의 집사로 일컬어지는 정상문이 잡혀들어간 직후에 노통 측은 대책회의를 갖습니다. 그런 다음 노통은 "정상문이 받은 돈은 권양숙의 돈이다"는 글을 띄웠습니다. 우선 많은 키를 쥐고 있는 정상문을 빼낼 수순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지금 이건 어디까지나 모종의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지는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점 오해 없으시기를).
두번째 글은 '검찰의 프레임'을 들먹입니다. 사실 이 글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대체 왜 그런 글을 띄웠을까 할 정도로 의미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는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하는 판사에게 보내는 일종의 시위 내지는 압박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검찰이 지금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김으로써 판사로 하여금 구속영장 발부에 부담을 느끼도록 하는 것일 수 있었겠다는 뜻입니다.
무튼, 실제로 정상문은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풀려납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박연차입니다. 정확히는 박연차의 입입니다.
만일 박연차의 저 말이 각본에 의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말해, 이후 박연차가 검찰에서 한 얘기를 모두 뒤집고 '기억이 잘못되었다'거나 '강요 혹은 협박에 의한 것이었다'거나 하면서 자신이 이전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돈을 전달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모두 잘못된 진술이었다고 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박연차 진술의 신뢰성은 얼만큼일까
내가 보기에 검찰이나 그동안 검찰이 흘린 내용으로 기사를 썼던 언론들은 모두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형국이 될 공산이 큽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박연차의 직접적인 진술 외에는 딱히 구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박연차가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얘기들, 이를테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따위의 얘기들을 그렇게 순순히 자백했을까 하는 점에서 이같은 의구심은 더합니다. 그러나 만일 박연차가 지금 검찰을 상대로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는 거라면 이는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변호사의 말을 종합하면, 노통측은 이 문제로 수차에 걸친 대책회의를 가졌습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 대책회의 결과에 대한 브리핑입니다. 이 브리핑에서 노통측은 자신들의 발언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같은 가이드라인은 노통의 글에서도 어렴풋이 나타나 있지만, 문재인의 발언에서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컨대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 액수나 그것이 쓰인 방식, 그리고 전달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얼버무리거나 아니면 분명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모호한 답을 하다가도, 돈을 받은 사람에 이르면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권양숙 여사였고, 노통이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은 최근이었다는 점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딱 잘라 답을 하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과의 첫 인터뷰에서 문재인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소상하게 밝히는 것이 도리지만 앞으로 검찰 수사가 남아 있는데 먼저 자세한 내용을 다 밝히고 나서면 마치 (검찰) 수사에 미리 선을 그으려고 하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궁금하겠지만 (돈을 받은) 시기와 명목 등 자세한 경위는 앞으로 모두 밝혀질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게 된 시기는?
“근래에 알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돈의 성격은?
“(권양숙 여사가) 빌린 것으로 들었다.”
-차용증을 작성했나
“나중에 다 밝혀질 것이다.”
-돈의 사용처는?
“내가 확인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오래 했고 원외 생활도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신세를 지다 보니 남은 빚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시기와 경위, 사용처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인가?
“인터넷에 올린 글 그대로다.”
다음은 한겨레신문과의 두 번째 인터뷰 내용입니다.
“나도 모른다. 집안일에 썼다고만 한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처가 쪽 채무 문제는 아닌 걸로 안다.”
-노 전 대통령이 100만달러 수수를 안 시점은?
“근래라고만 알고 있다.”
-권씨가 100만달러만 받은 게 맞나? 그 이상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권 여사가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을 시켜서 받았던 거고, 추가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없다.”
-수표나 계좌이체도 아니고 달러로 받았다면 차용금이란 주장은 설 자리가 줄지 않나?
“노 전 대통령이 퇴임 무렵에 박 회장한테서 빌린 15억원은 차용금 아니냐. 대통령이 그런 행위에서는 법률적 방법을 명확히 했다. 그런 면에서 (100만달러도) 그냥 줬다면 이상하지 않냐. 여하튼 100만달러 부분은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에서 설명한 그대로라고 본다. 10억원 부분에 대해서 사과문에서 설명해, 다른 얘기들은 저희로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용처, 차용 증빙 등을 궁금해하는 줄은 알겠는데 수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겠나. 그런 거 앞질러서 밝히는 거 적절하지 않다.”
문재인은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3억 수수설을 흘렸다가(지난 8일자 한겨레신문의 1면 헤드라인은 "권양숙씨, 박연차 돈 3억 받았다"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는 현재 검색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 기사를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 이후에는 100만 달러는 권양숙이 받았고, 500만 달러는 퇴임 이후 알았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권양숙씨의 검찰 조사 후에는 이 금액은 다시 13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_-). 일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인터뷰가 이루어지고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쓰다보니 글만 괜히 길어지고 말았는데, 이 글에서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노통 측은 이 사건을 두고 대책회의까지 가졌고, 그런 다음 돈 받은 사실까지 시인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금 검찰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쓰는 기사를 보면 너무 앞서나간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이러다 한 방 된통 뚜드러맞을 것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특히 박연차의 진술이 너무 순순히 나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박연차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수사를 진행하거나 보도를 일삼다가 당사자가 갑자기 태도를 돌면하여 "야, 이쉑들아. 그거 전부 훼이크였어~" 이렇게 말해버린대도 현재 나와 있는 결과만을 두고 보면 뭐라 할 말이 없는 형국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내가 보이게는 그렇다는 뜻입니다.
노무현의 해명과 방어, 참 민망하고 구차한
다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세 번째로 올린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는 글 전문입니다. 이전에 올린 두 편의 글과는 달리 이번에는 뭔가 결기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민망하고 구차하다 하면서도 굳이 홈페이지를 통해 이같은 글을 올리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민망하고 구차한 건 글을 쓰고 있는 노통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노통이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그의 홈페이지에서 늘어놓고 이같은 해명과 방어의 글을 듣봐야 하는 국민은 더 민망하고 구차한 지경이기에 하는 말입니다.[footnote]아, 이 부분에 대한 오해가 있을 성부러서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건 노통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것 자체를 두고 딴죽 걸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노통이 홈페이지를 통해 의견을 밝히는 거는 전혀 새로운 소통 방식이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내가 지금 구차하다 말하는 것은 그 방식이 넘 졸렬하고 찌질해보여서입니다.
기왕 밝히기로 했다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얼마를 어떻게 받아서 어디에 썼다고 화통하게 까고 갈 수도 있는 거를, 언론의 보도에 따라서 오늘은 이만큼만 내보이고, 또 내일은 조만큼 내비치고.. 이게 지금 뭐 하자는 짓이냐는 겁니다.
함 생각해보자구요. 와이프가 돈을 빌려썼고 그걸 뒤늦게 알았다고 치자구요. 그렇다면 이제는 그걸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받아서 어디에 무슨 이유로 썼는지는 다 알고 있을 것 아니냐구요. 그런데 그 얘기는 죽어도 안 합니다. 검찰에서 밝히겠다면서요. 국민 알기를 무슨 옆집 초딩으로 알아도 그렇지, 이게 말이 되는 야구냐구요. 그렇다면 검찰에 가서 밝히면 되는 거를 왜 굳이 노통 자신이 전화를 했다는 박연차의 진술에는 또 그게 아니라면서 설레발인 거구요. 쩝~ [/footnote]
하도 민망한 일이라 변명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언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 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재는 주로 검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이미 기정사실로 보도가 되고 있으니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참 부끄럽고 구차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민망스러운 이야기 하지 말고 내가 그냥 지고 가자. 사람들과 의논도 해 보았습니다. 결국 사실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도덕적 책임을 지고 비난을 받는 것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일이라는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주는 실망과 배신감의 크기도 다르고, 역사적 사실로서의 의미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사실대로 가는 것이 원칙이자 최상의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구차하고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몰랐던 일은 몰랐다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몰랐다니 말이 돼?’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상식에 맞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증거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도를 보니 박 회장이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보도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저는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무슨 특별한 사정을 밝혀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는 박 회장이 검찰과 정부로부터 선처를 받아야 할 일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진술을 들어볼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동안 계속 부끄럽고 민망스럽고 구차스러울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성실히 방어하고 해명을 할 것입니다.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제가 당당해질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일단 사실이라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9년 4월 12일
노 무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