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바람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지방으로 출장을 갑니다.[footnote]엄밀하게 말하자면 출장은 아니고, 연차 휴가에 가깝습니다. 집안 일로 가는 일이거든요. 다만, 업무는 계속되는 터라 출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을 뿐입니다.[/footnote] 블로그는 당연히 계속 운영합니다. 시간적으로 얼마나 충실한 운영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이라고 널널한 상황에서 하고 있는 건 아니니만큼 블로그에서 표면상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크게 없으리라고 봅니다.
하루 하나씩 블로그에 글 올리기
하루 하나씩 블로그에 글을 올리겠노라 작정하고 블질을 시작한 게 엊그제인 것같은데, 어제 날짜로 벌써 5개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직은 지나온 날들보다 남은 날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지금까지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켜왔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합니다.
실은 어제 어떤 선언을 하나 할까 생각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리 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싶습니다. 몇 가지 일 때문에 뭐든 하면 곧 이루어낼 듯싶기도 하고 해서 "앞으로 나는 이렇게 가겠다" 하고 선언을 하려 했던 건데, 그랬으면 클날 뻔 했습니다. 제가 여간 고지식한 게 아니어서 만일 그렇게 선언을 했다면 그걸 지키기 위해 죽을 둥 살 둥으로 매달리다가 아마 기진하고 말았을 것같아서 말이지요.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대개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출판사와 인터넷신문에 꽤 오래 있었습니다. 글 쓰는 분야에서 계속 있었던 셈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글을 잘 못 씁니다. 논리적으로 글을 풀어가는 능력도 없고, 무엇보다 기본적인 글발 자체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무려 5년 동안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면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글(껄랑 십 수개의 글)을 쓰는 데 그쳤을까요. -_ [footnote]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장담컨대, 오연호 기자만큼의 글발이 있었다면 지금의 오마이뉴스보다 백 배는 더 나은 인터넷신문을 만들고도 남았을 겁니다. ^^[/footnote]
글재주도 없어
실제로 저는 글쓰기에는 크게 취미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별로 노력을 못 했습니다. 아예 날 때부터 타고난 사람도 있긴 하지만,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실제로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교본으로 삼을만한 책이나 기사를 놓고 기본적인 틀을 익히는 한편으로 각 유형의 글에 필요한 기본적인 어휘와 주요 어휘를 자유자재하게 쓰는 훈련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저는 게을리했습니다. 정확히는 단 한번도 해보질 않았습니다. 다른 이에게는 열심히 하라고 시켰으면서도 말이지요. -_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유행이던 고시 공부를 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기출 문제를 보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footnote]그래서 말인데 미네르바님의 경우 제가 보기에는 딱 고시 체질입니다. 다른 것 다 접고 고시에 매달린다면 아마 수 년 내에 충분히 합격의 영광을 누리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일정한 틀에 맞춰 독학으로 익힌 어휘들로 풀어간 그의 글솜씨를 보건대는 그렇습니다. 미네르바님, 혹시 이 글 보시거든, 이 말 허투로 듣지 말고, 뜻이 있거든 꼭 함 찾아오세요. ^^[/footnote]
그렇다고 말빨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가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입니다. 말을 하다가 중간에서 얼버무리고는 한참 지난 다음에 뜬금없이 다시 아까 그 말을 계속하곤 해서입니다. 이건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이 딸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글만 못 쓰는 게 아니고 제가 생각해도 저는 사고력도 한참을 떨어집니다.
말빨도 없어, 생각도 짧아
블로그를 찾는 이들이 자주 댓글을 왜 그렇게 열성으로 다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그때마다 제가 하는 대답은 늘 똑같습니다. 댓글을 달면서 배우고 있는 거라구요.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거 그냥 하는 빈 말이 아니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글발도 없고 사고력도 떨어지니까 한 방에 가질 못 하고 댓글을 통해 조금씩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가는 것입니다.
제가 다닌 학과는 학부 때부터 시험은 늘 그냥 백지 한 장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걸 시험 종료 종이 치기 직전까지 거의 매번 백지로 갖고 있습니다.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되어서입니다. 결국 마지막 몇 분을 남겨두고서야 어쩔 수 없이 허겁지겁 답안을 채워가곤 합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형광등이었습니다. 반응이 한 인터벌씩 늦다고 해서 지인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언젠가는 다른 언론사의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데, 으레 그렇듯이 몇 분씩 있다가 겨우 답변을 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기자가 짜증을 내더라구요. 이런 제게 우리 형은 자주 그럽니다. "저런 넘이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우리 형은 나보다 공부는 못 하지만, 뭔가 필요한 거를 암기하거나 이해하는 데는 귀신같이 빠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내내 형한테 지청구를 듣고 컸습니다.
니가 할 줄 아는 게 도대체 뭔데?
그렇다면 니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는데? 하실 수 있습니다.
글발도 말발도 없지만, 생각도 살짝 짧지만 저도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몸으로 때우는 일입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뭔가를 도모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조직하는 일에는 자주 불려다닙니다. 물론 조폭같은 조직을 말하는 건 아니고, 그냥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일에는 뭔가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도 그 점은 인정해줍니다.
대체 뭘 하겠다는 거냐고 가끔씩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이 블질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은 결국 여기에 있습니다. 못 쓰는 글이지만 1년 동안 할 수 있는 한 애써 내 생각을 전하고, 그런 다음 그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뭔가를 함 해보려 하는 게 그것입니다.
그것이 도대체 뭐냐구요?
저는 그것을 밝혀 전하고 가는 시기를 7~8월로 잡고 있습니다. 아, 오늘 바람이 진짜 지깁니다.
<덧붙이는글> 이 글은 순전히 바람이 불어서 쓰는 글입니다. 어쩌면 바람입니다.
<덧2> 위의 글은 지난 2009/06/02 하민혁의 민주통신에 올렸던 글 http://blog.mintong.org/594 (새 창으로 열기) 입니다. 이곳 메인이 너무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는 터라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