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 뭔가 할 말이 있기는 한데,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다. 이런 경우 쓰면서도 그런 거 느낀다. '아, 이거 이 말을 쓰면 틀림없이 한 방 맞지..' 하는. -_

이같은 예감은 거의 한번도 틀리지 않는다. 우려한 부분에서 누군가는 정확히 치고 들어온다.[footnote]나는 이게 집단지성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footnote] 재밌는 건 이때 내가 보이는 반응이다. 당연히, '아이고, 잘못 했습니다. 이거 내가 쓰면서도 살짝 거시기했는데, 딱히 다른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질 않아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이렇게 나가는 게 맞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십중팔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월 어찌라고? 그게 뭔 말인지 진짜 모르겠어요?' 뭐 이런 식으로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왜 이럴까? 쪽 팔리서? 아니면.. 여전히 답답해서? 것도 아니면 그거 따지고 드는 게 얄미워서? 그냥 딴죽을 위한 딴죽으로만 보여서? 뭐 모르겠다. 어쨌든 이같은 자세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엊그제도 그런 일이 있었다. '국정' 어쩌고[footnote]지금처럼 블로거 일반, 혹은 시민 일반이 모두 거대담론에 빠져 있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도대체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닌 일에, 그것도 국정을 다루는 모든 일에 블로거 혹은 시민 일반이 나서 일일이 참견을 해야 하는 사회란 도무지 제대로 된 사회, 건전한 사회라 보기 힘든 때문이다.[/footnote] 하는 부분에서다. 여기서 내가 전하고자 했던 말은 '왜 의회 민주주의겠느냐'는 거였다. 한마디로 기나 고동이나 모두 나서 사사건건이 한마디씩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이겠느냐는 얘기였던 것이다. 당근 연빵으로 이의가 들어왔다. -_  

그런데 이같은 이의는 사실 실제로 내가 얘기하고자 했던 바에 주목한다면, 다시말해 내가 말만 제대로 했다면 굳이 제기될 필요가 없는 터였다. 예컨대, 저기서 내가 하고자 했던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세계일보 만평

[워싱턴타임스] "우리가 합의하지 못하는 또 다른 새로운 제안이 있군요.."


G20 정상회담의 무용성 혹은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있는 만평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했으나 새로운 제안이 나올 때마다 각국 간 이견차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빈정대고 있는 것이다.

20명만 모여도, 것도 나름대로는 각 나라의 최고 위치에 있는 대표가 모여서 한다는 정상회담에서도 20명 정도의 의견 조율조차 쉽지 않은 게 세상사 이치다. 하물며 4천만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면 거기서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일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없다.

그러니까 나는 '국정' 어쩌고 하는 말을 통해 이 얘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현 정권이 맘에 안 든다면 차라리 정권 교체를 위해 노력하는 게 더 바람직한 접근법이지, 모든 일을 사사건건이 트집을 잡는대서야 그걸로 이룰 수 있는 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그렇다면 정권에 대한 견제를 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설레발 치는 사람들 꼭 있다. -_

그런 거 아니다. 내 말은 견제조차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견제를 하더라도 전략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일의 경중을 따져서 정말로 내줄 수 없는 일은 모두의 힘을 거기에 집중하여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만큼 긴급 사안이 아니거나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겨지는 문제는 전략적으로 떨쿠고 갈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블로고스피어를 보면 어떤 때는 진짜 단세포들만 모여 있는 꼭 바보들의 천국 같아서 해보는 얘기다.


 
2009/04/08 20:22 2009/04/08 20:22
"노무현의 승부수는 항상 승리했다." 이 말은 지난 11일(2002.11) 노무현 인터넷선거특별본부 취재팀이 전하고 있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이하 노무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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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의 이 말이 오늘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있게 한 원동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추종자들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을 거듭하고 있고 노무현 스스로도 시시때때 금과옥조처럼 되뇌고 있는 '원칙과 상식'이라는 구호보다 '노무현의 승부수는 항상 승리했다'는 저 말이 노무현의 진정성을 보다 잘 드러내고 있다고 믿는 때문이다.

그렇다. 노무현은 '원칙과 상식'이 아니라 항상 '승부수'를 띄웠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말마따나 '노무현의 승부수는 항상 승리했다.' 그는 상고를 나와 고시 공부라는 승부수를 띄웠고 거기에 성공했다. 먹고 살만해지자 인권 변호사라는 직에 승부수를 던졌고 그 또한 성공했다. 그가 처음 띄운 고시 공부가 순수한 동기에서였다면 인권 변호사로의 승부수는 정치적인 승부수였다고 봐야 한다. 어쨌든 그는 거기서 '승리'했고 그 '승리'에 맛을 들였다. 정치쪽으로의 선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치가의 길에 들어선 노무현의 승부수는 더욱 정치해진다. 그는 항상 지지않는 쪽에다 승부수를 던졌다. 그가 김영삼이 아닌 김대중에게 의탁한 것을 두고 '원칙과 상식'을 지켰노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당시의 상황에서 '원칙과 상식'이라는 말을 굳이 붙인다면 그것은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지 노무현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는 결과만을 봐도 알 수 있다. 꼬마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신난한 정치역정을 겪거나 잊혀져 갔지만 노무현만은 승승장구를 거듭하지 않았던가?


노무현은 항상 잃을 게 없는 승부만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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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최악의 경우에도 잃을 것이 전혀 없는 승부수를 던지곤 했다. 그 추종자들은 자주 '원칙과 상식'의 대표적인 사례로 몇 차례의 부산 선거를 들고 있지만 노무현으로서는 이 또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승부수였을 뿐, '원칙과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도대체 노무현이 그 일로 잃은 게 뭐가 있었던가? 오히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쑈"를 부리고 있었을 따름이다. '원도 없이 돈을 써봤다'는 그의 말이 그것을 시사하고 있고, "쇼"가 실패할 때마다 한 단계씩 올라간 그의 당내 위상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러나 그 "쑈"가 아니다. 노무현은 이를테면 실패하면 "쑈"가 되지만 성공하면 '신화'가 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노무현은 실제로도 매번 자신의 당선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것은 노무현 자신이 확인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당선이 확실했지만 선거 직전에 불어닥친 몇 가지 변수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다는 말들을 여러 차례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상황 파악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국민사기극'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지난 여름의 국민경선을 노무현은 아직도 실제와 혼동하고 있다. 여차 하면 그 좋았던 시절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의 현실 감각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건지를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집권당 분열이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질 못한 채 모든 원인을 모조리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건 대단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노무현한테서는 반성적 사고란 찾아볼 수가 없다. 바로 "원칙과 상식 혹은 소신"이라는 허무맹랑한 신념, 즉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 말대로 '최면'에 걸려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세상을 위태롭게 하는 것 가운데 이보다 더 위험한 게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어느 원로 법조인이 그를 두고 '시한폭탄'이라 지적한 것은 꽤나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그가 매사에 즉흥적이라는 점이다. 최근의 단일화 담판을 두고 결단이라느니 언빌리버블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너스레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은 능히 그러고도 남을 정도의 즉흥성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임기응변 능력이 오늘날의 노무현 후보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즉흥성에 바탕을 둔 임기응변이 원칙이나 상식과 어울릴 수는 없는 일이다.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노무현의 저 모토 자체가 도무지 원칙과 상식과는 거리가 먼 임기응변식 조어인 것이다.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이 밤낮으로 되뇌고 있는 '원칙과 상식'은 다만 저들 스스로에 의해 세뇌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노무현의 정치 행보 어디에서 원칙과 상식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행보 어디를 봐도 원칙과 상식을 찾을 수는 없다. 하루에 수천 번도 더 넘게 '원칙과 상식'을 들먹이는 추종자들의 글 어디에서도 나는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에 대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하물며 '원칙과 상식'에 대한 논리적인 글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저들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믿고싶다는 심정적 의지에 따라 그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호랑이 없는 굴에서는 여우가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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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정치적인 승부수가 원칙이고 상식이라면, 그래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단 한번도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굽혀본 적이 없는 하민혁은 하늘님이 되고도 남을 인물이다.

아무리 좋은 '원칙'이라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지켜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온갖 고언과 회유에도 "호랑이는 굶어 죽을지언정 풀을 뜯지는 않는다"는 한 마디로 한 길을 가는 아무개씨의 자세 - 이런 게 '원칙과 상식'의 자세다.

하지만 다 좋다. 모든 걸 다 상황논리에 양보한다고 치자. 그러나 노무현이 정녕 '원칙과 상식'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최소한 이번 한번만이라도 그것을 직접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

적어도 원칙과 상식을 내걸고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사람이라면 후보단일화라는 더티한 야합으로 꽁수를 부리기보다는 차라리 장렬하게 산화하는 쪽을 택해야 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노무현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저 '원칙과 상식'조차도 저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도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은 여전히 '원칙과 상식'을 줄기차게 읊어대고 있다.

정녕 원칙과 상식을 말하고자 한다면 노무현은 민주당에 연연하지 말아야 했다. 꼼수 부리지 않고 정말 당당하게 원칙과 상식으로 바로 서고자 한다면 민주당에 안주하는 일에서 벗어나야 했을 거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서려 하기보다는 민주당이라는 틀 안에서 안주하는 길을 택했다. 영락없는 호가호위(狐假虎威)고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인 짝이다. 원칙과 상식은 그 작은 권력 앞에서 이미 내팽개쳐진 것이다.

언젠가 유시민은 이같은 노무현의 행보와 관련, "작금의 상황에서 민주당에 남아서 노무현씨가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민주당 내부에 노 후보와 손잡고 현재의 위기를 깨치고 나갈 수 있는 개혁 의원들이 없다. 무슨 미련이 있어 노 후보가 실정의 책임을 떠 안고 부담을 갖고 가려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좋게 말하면 유시민이 순수하다는 의미고 다른 말로 하면 유시민이 아직 권력 맛과 돈 맛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이번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합의를 두고 누구처럼 노무현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게 얼마든지 가능한 정치적 행위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무현와 그 추종자들에게 화가 나는 것은, 명백히도 원칙과 상식을 저버린 그 행위를 두고도 저들이 아직도 '원칙과 상식'을 들먹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원칙과 상식은 그렇게 아무 데나 자기 편한 대로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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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이번 단일화 합의에 대해 어떤 '셈법'도 없이 원칙과 상식에 의해 내린 결단이었노라고 말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러나 노무현의 이 말은 거짓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는 철저하게 이기주의적인 '산법'에 의해 움직였을 뿐이다. 최근의 지지추세로 보아, 여론조사로 가더라도 승리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것이 내가 노무현를 그 근본에서부터 믿지 못하는 까닭이다. 실제로는 철저하게 '승리'하는 쪽으로만 승부수를 던지면서도 입으로는 열심히 '원칙과 상식'을 외치는 그의 이중성이 미덥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은 허구다


그러나 내가 정작 노무현에게서 느끼는 문제점은 거기에 있지 않다. 사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용인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무현이 자신의 이러한 이중성에 대한 인식을 현저히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의 인식 일반이 극히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 모순된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오히려 자신의 그 행위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스스로가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식이고 신념이다. 그것은 잘못에 대한 시정 장치 자체를 결여하고 있는 때문이다.

노무현의 이러한 신념 체계가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비판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특정언론과 '전쟁'을 선언한다거나, 민심의 표출이라 할 수 있는 선거에서 판판이 지고 있으면서도 그 민심을 읽을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고, 실제로 조작에 지나지 않는 '국민'이라는 허상에 빠져 국민 일반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믿는 것 등은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전체를 조망하는 안목이 없어 주위의 몇몇 추종자들의 주장에 휘둘리고 있으면서도 여론 일반을 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에 대한 인식보다는 그것을 도리어 자신이 위대한 '진보'여서 사람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결과라는 식으로 믿고 설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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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말대로 천하의 불한당 그룹에 지나지 않고 그래서 자신이 그토록 증오해마지 않는 한나라당에조차 번번이 참패하고 있다면,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인 경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에 대한 반성적 사고이다.

그러나 노무현한테서 그것은 나뭇가지 아래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은 도리어 그 민심조차도 남탓으로 돌리고 만다. 조폭언론 때문이라거나 우매한 대중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과 그 추종세력이 알아야 하는 것은, 설사 그들 자신은 몇몇 언론에 생각을 좌지우지 당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중 일반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길지 않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통해 이미 드러난 일이고 또한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직전 선거의 정권교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계몽되어야 할 사람이 도리어 계몽 운동한다고 설치는 걸 보는 일이란 언제나 역겹다. 막말로 말해서, 노무현의 개인 홍보지에 다름없는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따위 선전 찌라시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강준만류의 선동꾼과 정권 홍위병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노무현이 존재하기나 했을까? 아니다. 단언컨대, 오마이뉴스나 한겨레가 없었다면, 강준만류의 선동꾼과 정권의 홍위병들이 없었다면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을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의 꼭두각시라고 보는 일각의 지적은 타당하다.


노무현은 꼭두각시 놀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문제의 본질은 노무현이 꼭두각시냐 아니냐에 있는 게 아니라 노무현이 그마저의 반성적인 인식조차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있다. 맹신도들의 맹한 소리에 파묻혀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여기는 허수아비라고나 할까? 자신의 정체성 마저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에 있으면서도, '원칙과 상식'이라는 허무맹랑한 이데올로기에 스스로가 사로잡혀 대중을 계몽하겠다고 설래발을 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노무현의 모습이다.

물론 꼭두각시라고 해서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그가 최소한 부패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가 사회의 부패 구조를 일소하기 위해 절치부심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나갈 사회에서 떠오르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거기서 보게 되는 것은 홍위병들에 의한 중국 문화혁명기의 광기이고 인민재판으로 선악을 가름하던 50년 전 동족상잔의 광기일 뿐이다. 이는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노무현과 그 추종세력들이 보이고 있는 패악질을 약간만 확장해도 이내 나오는 그림이다.

나는 노무현과 그 추종세력들이 '이상한 국민'을 들어 대중일반을 계몽하려는 우를 범하기에 앞서 먼저는 2,500년 인류의 정신사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래마지 않는다. 인류사에 노무현만한 인물이 없어서 이 세상에 전쟁이 있고 사회가 부패로 얼룩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노무현이 하고 있는 천방지축인 말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만에 하나 노무현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노무현에게 해주고싶은 말은 하나다. 세상에 전쟁이 그치질 않는 것은 바로 노무현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파쇼와 전쟁은 바로 거기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이 말의 의미조차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싶기만 하다.
/ 2002-11-29 오후 4:52:09 



 
<덧붙이는글> 오래 전의 글 하나를 끄집어내어 옮긴다. 지난 2002년 대선을 20여일 앞둔 시점에 쓴 글이다. 이 글을 옮기는 이유는 그때의 내 생각이 어쩌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그가 최소한 부패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가 사회의 부패 구조를 일소하기 위해 절치부심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아썼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에 대해 '그깟 정도의 돈을 좀 썼기로 뭐가 문제냐'고 해버리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노통 자신이 '시골의 촌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노건평씨가 보여준 파렴치한 행적을 배경에 깔고 보면 이게 그렇게 간단히 접고 넘어갈 사안은 아닌 걸로 보인다. 부정한 돈을 만지는 이가 있다면 '패가망신'을 시키겠다는 그의 말 자체에 신뢰가 사라질 수 있는 때문이다.

어느 분의 표현대로 노건평의 '넌센스한' 플레이에 이어 노무현 자신이 박연차의 돈을 받아 썼다는 사실은 그 무게감이 적지 않다. 그래서다. 딴에는 꽤 안다고 여긴 노무현에 대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 있고, 저 판단 또한 틀렸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 글을 굳이 옮겨 적는 까닭이다. 

<덧2>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번에 던진 '승부수'의 결과가 주목된다. 모르긴 몰라도 '성공'에 이르기는 힘들지 않을까싶다. 노무현의 승부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그가 내내 잃을 것이 없는 승부만을 해왔기 때문인데, 이제는 잃을 것이 없지 않은 때문이다.
 
2009/04/08 07:37 2009/04/08 07:37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이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전국 중·고등학교 학급 11만 5322개에 1학급 당 4종의 신문을 무료로 제공 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들어갈 예산이 총 1280억 원이며 정부가 부담예정인 예산은 약840억 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허 의원은 또”OECD 회원국 인구 1000명 당 신문구독부수를 보면 일본이 633.7부(1위)로 가장 많고, 노르웨이 626.3부(2위), 핀란드 518.4부(3위) 등이며 한국은 약 200부로 13위에 그쳐 정부의 적극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보도)


정부예산으로 학교에 계도지를 나누어 준다고?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


지천명의 중턱을 지나도록 국가정책의 시혜를 본 적이 없는 필자는 이쯤에서 허의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국가가 세금을 동원하여 신문을 보급해 주어야 할 만큼 oecd국가 내에서의 신문구독률13위가 정녕 부끄럽다고 생각하는가? 세금으로 청소년들에게 신문을 강제 구독시켜야 할 만큼 우리의 문화현실이 척박하다고 보는가?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31위 이고 창업 환경점수는 전 세계 126위이다. 신문 구독률이 못사는 나라가 없는 oecd국가 중에서 13위라고 하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지 고래심줄 같은 국민세금을 퍼내서 구독을 강제해야 할 위난형국은 아니지 않는가. 국가의 세금은 먼저 본 선량(국회의원)이 인심 쓰라고 거둔 돈이 아니다.

신문쟁이들의 말에 “야마를 설정해 놓고 팩트를 몰아간다”는 말이 있다. 미리 논조의 방향을 설정해 놓고 기자들이 취재한 자료들을 끼워 맞춘다는 말이다. 나만의 환상일까?.

"사르코지 대통령은 만 18세가 되면 1년 간 무료신문 구독 권을 주는 지원책을 제시했고, 일본은 '문자·활자문화진흥법' 제정과 '신문열독 정비5개년 계획'을 통해 학교에 5∼6가지 신문을 비치 하도록 하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생뚱스런 예시를 둘러대는 허의원에게서, 정권 또는 사주의 눈치를 보며 이 나라의 담론방향(agenda setting)을 농단하는 기름진 중견언론인(gate keeper) 들의 야마 몰아가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여느 부패한 언론인들의 습관처럼 전세계 191개의 국가 중에서 2나라를 제외한 189 개국이 왜 국민을 상대로 한 계도지를 발송하지 않고 있는지 허의원 역시 설명하지 않았다. 배척해야 할 교언영색이요 언론마술이다. 부패 언론인들의 생게망게한 장난 수법을 선택받은 선량께서 따라 해서야 되겠는가.

2008년 12월, 대전시내 5개 자치구 의회의 예산안 심의에 즈음하여 대전충남민언련은 국민세금낭비의 대표적 전형인 계도지예산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언련자료) 중도일보와 충청투데이가 즉각 화답하였고 해당 자치단체는 상당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의 중.고교 학생들은 정부가 나서서 신문을 읽히고 계도해야 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군사정권하에서의 치사한 권언유착 거래였던 계도지 제도를 국가예산으로 아예 대놓고 집행하겠다는 집권 여당의 발상이 아찔하기만 하다.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


본사의 확장강요에 허리가 휘는 지국실정을 고려해 정권을 상대로 힘있는 기자들이 확장을 해 준 것이라면 지국장들이 단호하게 거절해야한다. 지국장들은 본질적 판매구조의 모순을 해결하기를 바란다. 하루의 삶을 더 연장하라며 던져주는 마약이라면 단연코 거부한다.

신문구독은 선택하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껏 본사의 불법확장강요에 의해서 지국장들의 자존과 체면이 얼마나 더러운 개골창에서 나뒹굴었는가. 지국이 신문을 배달 보급하는 곳이지 경품으로 독자를 낚는 삐끼사무실은 아니다.

오프라인 미디어산업의 위기를 맞아 영세한 신문사를 지원하기 위한 고민은 사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참여정부시절 힘 있는 여당의원의 한 사람이었던 민주당 최문순의원도 허의원과 비슷한 입법 발의를 시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회의원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권력과 가까운 여당의원이 낮 도깨비 같은 입법제의를 하는 양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 같다.

보수일색으로 치우친 우리의 담론문화를 건강하게 바꾸기 위해 군소신문보호법을 발의하려는 의도로 아는지 어느 마이너신문에서도 허 의원의 생뚱스런 법안발의를 지적하는 곳이 없다. 작은 신문사들은 참여정부 때에 설립된 국영회사 신문유통원을 통해 배달보급을 하고 있으니만큼 혹시라도 공짜확장과 같은 계도지 떡 고물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김치찌개는 언론이라고 하는 아고라냄비에서 김치와 갖은 양념이 보글거려야 제 맛을 낼 수가 있다. 다양한 언론이 존재해야 여러 계층의 정서를 두루 반영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된장이나 김치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 민주주의라는 맛있는 요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용성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매체전문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법안으로 신문지원 제도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독자 선택권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신문 선택권을 학교에 줄 것인지, 학생들에게 줄 것인지 등이 고려 돼야 한다"면서 "신문 선택문제와 관련해 어느 정도 모델을 갖고 법안을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지금은 맛과 색깔이 같은 조중동이 대한민국 신문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치찌개에 온통 된장 뿐인 셈이다.

신문유통원을 통한 영세신문만의 제한적 계도지배포에는 반대한다는 조중동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신문 판매업계에 흘려지고 있다. 누구를 위한 입법발의인지 안 봐도 뻔한 노릇이다. 함구하고 있는 마이너신문에서 아직도 삼삼한 꿈속을 헤매고 있다면 이제라도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고 싶다.

남들의 위선에는 인내할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끔찍한 위선도 마다하지 않는 언론이 오랜 역사를 가진 메이저 언론사들의 본래 모습이다. 상생이나 호혜의 정신 따위는 그들에게는 다른 나라 말이다. 엄한 놈 다리 긁지 말고 신문판매 매커니즘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보라.

나치의 프로파간다수법을 모방하는 현 정부의 언론개입정책에 대하여 정의를 부르짖던 마이너 신문마저 계속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이나라 언론의 희망은 어디에서 찾겠는가.

이 정권이 계도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우리의 중 고교 청소년들이 이 사회의 주인이 되었을 때 신문은 정보의 오류와 판단의 장애를 부르니 만큼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계도정책을 펼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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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년  4 월  7 일
조지기 통신   조의식





 

<덧붙이는글> 위에 옮기는 글은 "전국신문지국장연합 - 달배마을사람들" 조의식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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