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묻혀 지내느라 최근 신문을 통 보지 못 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손석춘 기자와 김동민 교수가 '때아닌' 진보-개혁 논쟁을 벌인 모양이다. 어김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대에서다.

노무현을 사모하는 사람들(이제부터 '노빠'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한다)이 들으면 사뭇 언짢아질 수 있는 얘기지만, 노무현 덕분에 진보-개혁 세력이 20년 동안 쌓아온 노력이 한꺼번에 날아갔다는 손석춘의 지적은, 김동민의 헛발질에 관계없이 타당하다.

노무현은 애초에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노무현 자신을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민주-개혁 세력을 위해서이다.

후자부터 말하자면, 이에 대한 명징한 사례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민주-개혁 세력의 다툼과 분열 양상이다. 분열의 원인은 단순하다. 일찌기 시인 신동엽이 토로한 그대로 '알맹이'와 '껍데기'를 가리지않은 맹목적 '이합집산'의 결과다.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지난 대선 정국에서 이들은 오직 권력만을 탐했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왜 권력을 쟁취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나 기본적인 원칙조차도 없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이것만을 외쳤다. 그게 한계였다.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 "전쟁하자는 말이냐?" 따위의 수사에도 기꺼이 미쳐 환호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왜'에 대한 논리도 부박했고, '그 다음은 어떻게'에 대한 인식은 아예 부재했다. 한마디로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지지세력의 분열 양상이자, 10%대 지지도의 여당이고 대통령이다.

민주-개혁 세력, 나아가 진보-개혁 세력을 위해서는 권력에의 의지 혹은 권력에 대한 탐욕보다는 자신의 이념 혹은 신념의 공고화에 오히려 더 치열했어야 옳았다. 권력욕에 눈이 먼 이들에게는 그러나 이념이나 신념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스스로의 존재 의미와 근거 자체가 사라지는 지점이다.

노무현의 경우는 '착각' 혹은 '착시'에 사로잡힌 경우다. 엄밀하게 말해 노무현은 민주-개혁 세력이 내세운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노무현 현상의 주체는 노무현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서는 유시민 조차도 분명하게 짚어준 바 있다. "엉겁결에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이 노무현에 대한 유시민의 진단이었다.

노무현도 처음에는 이를 인정(하는 듯?)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등의 수사를 구사하던 인수위 시절이 그러했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서는 순간 엄연한 이 팩트를 노무현은 이내 외면 혹은 폐기해버렸다. 그리고는 여느 권력자들과 똑같이 스스로의 '성공 신화'에 빠져버렸다. '특검 수용' '성공 특강' 등을 거리낌없이 행하던 바로 그 어름이다.

손석춘과 김동민 간의 논쟁은 이 두 가지, 즉 원칙없이 이루어진 '껍데기들의 이합집산'과 '노무현의 착각'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므로 이들의 논쟁은, 그것이 아무리 치열하게 전개된다 해도, 아니 치열하면 할수록 더더욱 '권력 논쟁' 혹은 '감정 싸움'의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다. 원인은 제쳐두고 결과만으로 벌이는 때아닌 혹은 때늦은 논쟁일 뿐인 때문이다.  

민주-개혁 세력 혹은 진보-개혁 세력이 진정으로 고민하고 토론해야 하는 것은 손-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식의 소모적인 언쟁이 아니다. 원인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내실화 곧 '알맹이'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동의에까지 이른다고 해도(실은 여기까지 이르기도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과연 이들로부터 방향 전환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원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긍정적이지 않아서다. 역사는 우리에게 한번 권력에 맛을 들인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버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저들 손-김 간의 논쟁에서 희미하게(먹물들의 특성이다) 읽히는 것은, 진보-개혁-민주-평화라는 그럴싸한 수사 아래 벌어지는 (어리버리) 여당의 분열 사태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저 독한 '권력에의 의지'다. 노무현 정권이, 아니 더 정확히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중이 고기맛을 알면 절간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권력이 주는 단맛에 취한 이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더 치열해주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남북 분단 상황과 군사 정권이 지닌 한계와 패착에 빌붙어, 이론적 토대 구축이나 비판적 성찰 없이 애오라지 '민족'과 '타도'를 외치는 것만으로 권력에 맛을 들인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 2007-01-06 

 

<뱀발> 이런 이야기 하면 으레 '그럼 이회창이 되었어야 한다는 말이냐'고 따지고 드는 이들 꼭 있다. 제삼의 길은 있었다고 답하는 일도 귀찮고 하니, 이들에게는 여권 2인자(유시민)의 말을 그대로 빌어 미리 답하겠다. "이회창이 대통령 되었어도 나라 안 망한다."
또 있다. "지금 이만큼이나 민주화된 것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이 또한 최고 통수권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어서 미리 답해둔다. "노무현이 아닌 누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현재의 민주화는 당연히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덧붙이는글> 위에 옮긴 글은 지금부터 2년 전 다른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다른 얘기를 하나 하기 위해 우선 이 글을 옮겨둡니다.
 
2009/04/01 12:37 2009/04/01 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