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를 아시나요?


미네르바

미네르바


미네르바, 2009년 새해 벽두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를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의 이름에는 한결같이 '인터넷 최고의 논객', '경제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2009년 초, 미네르바는 국민의 우상이었고,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의 운명이 늘 그러하듯이, 미네르바라는 우상 또한 그 숭배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상위그룹 가운데서도 0.001%에 속하는 최고위 계층, 최고 학부와 굴지의 회사를 두루 거친 최고 경영자 출신, 50대 유학파 등의 화려한 이력이 고졸 학력의 30대 백수 청년으로 드러나는 순간, 우상은 그 역할을 다 합니다. 일부 기자와 블로거들은 경악하고 그 중 일부는 이성을 잃고 광분합니다. 설 익은 음모론까지 들고 나와 설레발을 칩니다.


미네르바

미네르바, 신종 영웅놀이 (c) 초딩카툰 그림i아이들


그러나 이 마저도 이내 시들해져 갑니다. 사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그들의 음모론도 그 색깔을 달리하여 나타납니다. 마치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의 유력지 모니퇴르가 보여준 행태를 보는 듯 합니다.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은 유배지 엘바섬을 탈출하여 20일만에 파리로 돌아옵니다.

다음은 당시 이를 보도하면서 모니퇴르지가 헤드라인으로 뽑아낸 기사의 제목들입니다. 나폴레옹이 파리에 가까워질수록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사의 타이틀이 인상적입니다.

'악마, 유배지에서 탈출'
'코르시카 출신의 늑대, 칸에 상륙'
'맹호, 가프에 나타나다'
'폭군, 리용에 진입'
'보나파르트 북으로 진격 중'
'나폴레옹 내일 파리로'
'황제, 퐁텐블로궁에'
'만세! 황제폐하 어젯밤 취일리 궁전에 도착'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은 모니퇴르가 아닙니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그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익히 알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기자와 블로거들이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나아가 이같은 짓을 하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희번득한 논리로 합리화하기에 바쁩니다. 19세기의 모니퇴르보다 못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진영주의 논리고, 최소한의 염치조차를 찾기 힘든 대한민국 언론과 블로고스피어의 현실입니다.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 진상조사 보고서 (요약)


미네르바
동아일보와 신동아의 사과문

동아일보와 신동아의 사과문


이번 사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동아일보에서 어제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에 대해 거듭 사과를 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동안 자체적으로 벌여온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 진상조사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하면서입니다.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 진상조사 보고서 (요약)

하지만, 음모론까지 들먹이며 거의 광분에 가까운 행태를 보여준 일부 언론과 블로고스피어는 여전히 조용하기만 합니다. 자신들의 행태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여전한 말 바꾸기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에 바쁜 모습입니다. 일부는 아예 입을 닫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연초의 저 열광이 마치 거짓말이나 되는 듯이 조용합니다.


미네르바

미네르바, 그는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덧붙이는글> 들을 음악이 없다, 사줄 음악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여기를 가보시라. 들을 음악이 있다, 사줄 음악이 있다!
 
2009/03/19 21:32 2009/03/19 21:32
전문가는 비전문가인 일반인에게 전문 영역을 일반적인 말로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빈치 코드는, 다빈치 코드를 쓴 작자는 확실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춘 사람이라고 봐도 좋겠다. 이에 비한다면 이문열의 경우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나는 자주 이문열의 대표작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의 아들'에 대해 장편으로 개작하기 이전의 중편이 훨씬 더 좋다고 이야기해왔다. 바로 위의 전문가론에 의해서다. 개작하기 이전의 중편 사람의 아들은 읽는 데 큰 부담이 없다. 기독교사 일반에 대한 이해가 없이도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장편 사람의 아들 경우는 우선 읽는 일이 지겹다.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를 읽었다. [footnote]호모 엑세쿠탄스 - 이문열의 신작 소설을 읽고 있다. 3권으로 된 소설 가운데 이제 막 1권 읽기를 마쳤다. 지난 2002년의 여러가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우선 '성민'이라는 주인공 이름이 낯익다. 2003년까지 내가 쓰던 닉이 '백성민'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은 성이 다른 '신성민'이고. 소설에 등장하는 대화와 장소들 또한 낯익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할 얘기가 꽤 있지싶다. 그러나 소설 읽기는 이쯤에서 마쳐야 한다.
도대체 사는 게 팍팍하다. 정리해야 할 일이 있다. 눈까풀은 밀려 내려오고. 일단은 커피부터 쏟아부어야겠다. 버텨야 할테니. -_   2007/02/05 11:17 [/footnote]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작가의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이 정도였는가 하는 점에서 그랬고, 무엇보다 현학적인 소설 내용을 읽기가 지겨워서였다. 다빈치코드는 단 한 챕터도 쉽게 건너뛰지 못할 정도의 응집력이 있다. 그러나 호모 엑세쿠탄스는 몇 페이지씩 건성으로 읽고 넘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굳이 애써 읽지 않아도 좋은 내용들이 산더미다. 이건 작가의 현학적 취미를 충족시키는 것 외에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독자는 역사서를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설 읽기를 기대하고 호모 엑세쿠탄스를 택했을 터다. 호모 엑세쿠탄스는 독자의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소설이다. 경향성에 이야기가 잡아먹혀버린 꼴이다. 이에 대해 이문열은 황석영 등을 들며, 참여 아닌 작가가 있느냐고 투정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황석영 등을 비판해온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이고 보면 이 또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덧붙이는글> 이 글은 아래 댓글 놀이에서 나온 호모 엑세쿠탄스에 대한 얘기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대중없이 적는 글입니다.  http://blog.mintong.org/498#comment4664 (새 창으로 열기)
 
2009/03/19 02:24 2009/03/19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