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중앙일보 인터넷판에서 MBC 김주하 기자의 발언을 왜곡하는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김주하, 자기 밥그릇 챙기기 인정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오늘 중앙일보가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게재했다는 소식입니다


[속보!] 꼬리내린 중앙일보, 김주하 왜곡보도 공식사과

[속보!] 꼬리내린 중앙일보, 김주하 왜곡보도 공식사과



MBC 노동조합 공식블로그에서는 이를 "[속보]꼬리내린 중앙일보"라는 타이틀로 전하고 있군요 중앙일보 홈페이지를 들어가니 확실히 초기화면에 다음과 같은 정정기사 문이 떠 있습니다


[정정합니다] 김주하 인터뷰 기사 제목 관련

 
역시 MBC 언론노조의 힘은 대단합니다 중앙일보의 저 정정기사 관련 소식을 듣보면서 든 첫 느낌이 바로 "MBC 언론노조는 힘이 쎄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놀랬습니다

문제가 된 중앙일보의 제목 비틀기 -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사실 저거 별 거 아닌 문제였습니다 어느 언론이고를 막론하고 눈만 벌어지면 밤낮으로 하는 일이 저 짓이었으니까요 (아니라는 넘 있으면 그넘 내가 책임집니다 연락하세요) 이게 얼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인가 하면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그걸 아예 독자 서비스라며 자랑까지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참고] 조선닷컴의 제목 낚시질, 올해 이렇게 해 왔다? 
나는 조선일보의 이 점이 너무 맘에 듭니다 얼마나 솔직한가요 주디로는 성인군자를 부르대면서 뒷구멍으로는 패거리를 지어 온갖 추잡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양아치같은 넘들에 비한다면 조선일보의 저 솔직함은 누가 뭐래도 일등 먹어 좋은 능히 본 받을만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거의 일상으로 벌어지는 이같은 일에 대해 존심 강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대 중앙일보에서 제꺼덕 사과문을 게재하고 나선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지요 그리고 그건 다른 한편으로 MBC 노동조합의 힘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일입니다

도대체 기사의 내용도 아닌 기사 타이틀 하나 잘못 붙인 걸 가지고 법적 소송을 불사하겠다며 설래발을 치는 게 정상은 아닐 터입니다 그것도 왜곡이라면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 바로 그 MBC에서 말이지요 참으로 소가 (웃다 뒤로) 넘어갈 일이겠습니다

무튼 좋습니다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 일단은 훈훈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이 개같은 짓 더 이상은 안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글>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MBC 언론노조의 글 말인데요 내가 중앙일보의 기사를 문제 삼은 시각이 4일 오후였습니다 그런데 MBC 언론노조에서는 그날 자정쯤에 그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지요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보건대는 MBC 언론노조의 저 문제 제기는 내가 쓴 글을 보고 나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만일 그렇다면 최소한 처음 문제 제기를 한 글에 대한 언급은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 글을 단초로 삼아 문제를 제기했으면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빠뜨린다면 그건 왜곡 못지않게 혹은 왜곡보다 더 나쁜 아주 못된 짓이거든요 자주 하면 버릇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MBC 노조 여러분, 이 글 보거든 어떤 식으로든 해명 함 해주세요

2009/01/06 20:42 2009/01/06 20:42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뿔났다 국회에서 '분노의 하이킥'을 날렸다 유쾌 상쾌 통쾌하다 멋지다 만세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건 한 가지다 하루라도 빨리 국회가 폭파되는 것 - 국민 모두는 하루라도 빨리 국회가 폭파되었다는 소식을 보고싶고 듣고싶다 그래서 요청한다

대한민국 경찰은 이 시각 이후 강기갑에게 쌍권총을 허하라!  아니다 쌍권총으로 어디 가당키나 할 일인가 대포 정도도 부족하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아예 미사일 몇 기 하고 전차 몇 대는 내줄 일이다 가능하다면 폭격기 몇 대도 추가해줘야 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이른바 국회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터다 


 
[영상]강기갑 대표 '분노의 하이킥' 사람 쪼잔하게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건가


강기갑은 쪼잔하게 놀지 말고 당장 국회를 폭파하라!

만일 수구꼴통 대한민국 국방부가 협조하지 않거든 이스라엘 공군이라도 부르라
것도 안 되면 김정일한테 미사일이라도 몇 기 빌리시라

그래서 제발!
국회 저거 한방에 날려버리시라! 국민들 속이라도 좀 션하게 풀어주시라!



2009/01/06 04:19 2009/01/06 04:19
그만하면 말은 충분하다.
이제는 실제 행동을 보여다오.

화려한 말을 늘어 놓는 동안, 무엇이든 실속 있는 일을 할 수도 있을 터.
기분만을 따지고 있대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망설이는 자에게는 결코 기분 날 때가 없는 것을.
그러니 이제 지체 없이 달려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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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되지 않는 일은 내일 역시 되지 않는 법,
하루라도 헛되이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될 듯한 일이라면 단단히 결심하여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 되면 일단 잡은 기회란 쉽게 놓치려 하지 않기 마련이고, 일은 결국 추진될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노력하여 당당한 성공을 거두도록 해야 하며,
어릿광대와 같은 과장된 몸짓을 일삼지는 않을 일이다.
자신이 하는 말이 진실한 것이라면,
굳이 말투를 꾸며댈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참는 마음, 인내 그 자체에 저주 있으라!


말이란 붓 끝에서 이미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니,
이후로는 봉랍이나 양피지 따위의 문서가 오히려 그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다.


학문을 하는 일도 습관 들이기에 달려 있다.
갓난 아이도 어머니의 젖을 물리면 처음부터 덥석 덤벼들어 빠는 것은 아니다.
버릇이 든 다음에야 비로소 즐거이 젖가슴을 찾게 되는 것이다.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그들 역시 날이 갈수록 학문의 젖가슴을 더욱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이론이란 모두가 회색이며, 푸른 것은 오직 인생이라는 황금 나무뿐이다.


완전한 모순은 그 신비롭기가 현자나 바보에게 모두 똑같다.
학문이란 실로 오래고 새로운 것이니,
셋은 하나이고 하나는 셋이라면서 진리 대신에 오류를 말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되는대로 지껄인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 바보들과는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헌데도 어떤 말을 듣게만 되면,
사람들은 흔히 거기에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숨어 있는 듯이 생각하려 덤빈다.


교회는 그야말로 튼튼한 위장을 가지고 있다.  
온 나라를 집어삼키고서도 아직 한번도 체한 적이 없을 정도로.


어떻게든 자기만 옳다고 고집하려는 자는
그 한 가지 주장만을 계속하면 틀림없이 이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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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깊다는 것은
대개 허영심이나 천박스러움에서 기인한 것일 경우가 많다.


감정만이 전부이니,
이름이란 다만 하늘의 불길을 안개처럼 싸고 있는 소리와 연기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모두 위로 오르려고만 한다.
그들은 서로 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밀리고 있는 것이다.


본성은 죄악이며 정신은 악마이다.
그리고 이 둘이 어울려 의혹이라는 사생아를 낳게 된다.


젊은이들은 선생이 순수한 진리를 말해 주어도 전혀 만족해 하지 않는다.
헌데 세월이 흘러 그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한 후가 되면
그것이 마치 그들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여기면서
선생은 바보였다고 말한다.


포도즙이 아무리 이상하게 끓어오른다 해도, 결국 그것은 포도주가 되고 만다.
(이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여서, 제 아무리 똑똑한 척 설쳐대는 젊은이도
결국은 지난 세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의사를 자신의 오만한 생각대로 지배하려 든다.


방황을 해보지 않으면 깨치지 못하는 법,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혼자 힘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충고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아무리 지혜로운 이야기도 이미 굳어버린 귀에는 거슬리기 마련이니,
그들은 매양 같은 실패에 대해 스스로 화를 내고 자책은 하면서도
항상 제 고집을 꺾으려 들지는 않는다.


앞날의 일은 알 수 없는 것,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인간에게 그것은 언제나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그리고 미리 알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은 그것을 닥쳐오기 전에는 믿지 않는다.
(이는 과거의 모든 예언이 증거하고 있는 바이다.)


부끄러움과 아름다움은 서로 손을 맞잡고 이 세상의 푸른 길을 함께 가지 못한다.
이것은 전해지는 옛말이긴 하지만, 그 뜻은 여전히 엄숙하고 진실하다.
이 둘 사이에는 예전부터 깊은 증오가 뿌리박혀 있으니,
이 두 원수는 언제 어떤 길에서 만나드라도 서로 등을 돌려댄 채,
각기 발걸음을 재촉하여 황망히 멀어지고 만다.
부끄러움은 슬퍼하고 아름다움은 뻔뻔스럽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어야 한다.


행복과 아름다움을 늘 함께 누릴 수는 없다.


행위만이 전부이며, 명성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산다는 것은 곧 자신을 지킨다는 것이다.


늙은이는 손에 넣은 것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세계를 소유한 사람이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몇 그루의 나무로 인해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부유함 속에서도 결핍을 느낀다는 건 우리의 가장 큰 고통이다.


폭력에는 순순히 복종하라!
그러나 이 위험을 대담하게 견디려 한다면 집과 대지, 그리고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싸워 이기는 사람만이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2009/01/06 03:11 2009/01/06 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