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장집 교수
‘반이명박’ 넘어 ‘대안정부’ 준비해야
- ‘노무현 이후’ 남겨진 과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제도를 존중하고 이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 그것에 반해서는 정치 안정도, 사회 안정도, 정권 유지도, 정책 추진도, 경제 발전도 가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 전국적인 애도와 정부 비판의 큰 흐름은 이를 실증한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평범하지만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국의 서민, 소외 세력이 배출한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와 굴욕감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이상과 가치는 깊은 공명을 가져왔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정치적 출로도, 어떤 정신적·심리적 의탁도 갖지 못한 보통의 시민들에게 그의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져다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데까지만 허용되고, 사회 여러 부문과 정당 체제, 나아가 체제의 운영 원리를 새롭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개인에 대해 과도하게 책임을 물었던 때도 많았다. 사실 그의 성취와 한계는 넓게는 한국 민주주의 전체, 좁게는 민주화 세력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민주화 세력 사이에서도 지난 정부, 지난 정치인들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을 따지는 것보다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데 힘이 모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이 가능한가?

야당을 강화하여 현 정부를 대체할 대안 정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 어려울 것 같다. 방향에 대한 선택은 이처럼 비교적 간단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것이 오늘의 정치 현실이다. 지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집합적 열정을 불러일으켜 권력에 항거하는 것보다, 이를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집권파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 차기 정부가 될 강력한 대안 세력을 형성해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배웠다. 권력에 항거하는 열정의 분출이 반이명박 정서를 최대화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대칭적 양분 구조가 가져올 정치적 효과는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국내외의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듯이, 운동과 제도의 체제가 분리된 양극화된 갈등 구조는 보수의 장기 집권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이 대안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보수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대표하고, 정책 대안을 개발하고, 지지 기반을 다져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은 외부로부터 인적 자원을 수혈하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보수적 이념에서 훨씬 더 개방적이고 유연해야 하고, 실현 가능한 성장 정책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적 이슈와 노동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뤄야 하고, 기존의 진보적 정당이나 노동운동과도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의 요구들은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과 병행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과정은 정치의 방법을 통해 대중적 에너지를 어떻게 결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모델이었다. 그가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 정치인들, 정치 지망생들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의 하나는, “모나면 정 맞는다”라는 말로 압축된 보수적 정치 규범에 순치되지 않고 보여준 과감함이다. 정치에서 비난받을 일은 대중의 에너지를 허비하는 일이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7년 전 노무현이 이룩한 일을 성취해낼 또다른 노무현을 요청하고 있다.

최장집(미국 스탠퍼드대 교환교수)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 ··· 948.html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한겨레신문 구독 | 한겨레21 구독]

2009/06/01 18:40 2009/06/01 18:40
"온 사회가 다 썩었는데도 정치인들에게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항변은 아무 소용이 없다. 권력에는 언제나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사회 전체가 부패의 늪에 빠져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에게 보통사람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게 싫은 사람은 정치를 그만두면 된다."

유시민의 칼럼에 나오는 명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함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전문을 옮긴다.


유시민


유시민의 세상 읽기 (동아일보)


정치인과 도덕성   


재산과 납세실적, 병역과 전과(前科) 등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신상정보 공개가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민주당은 이것이 선거전의 열세를 만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장담한다. 자민련과 민국당도 정치적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큰 ‘피해’가 예상되지만 정보공개 그 자체까지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건 무엇보다도 정보공개에 대한 여론의 압도적 지지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성난 유권자들의 감정적 비난이다. 입 제대로 달린 사람치고 정치인 집단을 향해 혼잣말로라도 한두 마디 거친 욕설을 날리지 않은 이는 아마 드물 것이다. 저잣거리의 분위기가 이렇게 험악하면 신문과 방송도 따라가기 마련이고, 언론의 험악한 보도와 논평은 시중의 비난 여론을 더 뜨겁게 달구어 놓는다. 이런 판국에 정보 공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정치인들이 무슨 특별히 악질적인 범죄자들의 집단이나 되는 것처럼 모질게 질타하는 분들에게 이것 하나는 꼭 물어보아야 하겠다. “문제가 있는 곳이 정치권뿐인가? 정치인들이 다른 사회 집단에 비해서 특별히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게을리 하고 파렴치한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사람들의 집단인가?” 내가 보기에 그렇게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들은 다만 우리나라에서 사업하는 보통 사람들이 보통 하는 정도, 보통 하는 방법으로 탈세 또는 절세(節稅)를 했을 뿐이다. 행정 사법 언론 재계 등 다른 모든 분야의 권력자와 부자들이 다들 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이런저런 병역면제 사유를 만들었을 따름이다.

정치권은 청정해역 대한민국에 홀로 뜬 부패의 섬이 아니다. 정치인의 부정부패는 ‘총체적 부패공화국’ 대한민국의 수많은 얼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 설킨 부패의 먹이사슬을 이루는 하나의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은 억울하다. 촌지와 뇌물을 주고받으면서,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반세기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낯을 바꾸어 정치인들을 맹렬하게 비난함으로써 자기가 저지른 똑같은 부정부패를 감추는 알리바이로 삼은 셈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점은 또 하나 있다. 후보자의 신상정보 공개는 이번에 처음 도입하는 제도다. 이번 총선 후보자들이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이런 제도가 없었다. 돈이 있으면 권력도 살 수 있고, 권력을 가지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고, 그러면 명예도 저절로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던 시절에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달리 할 수 있는, 또는 할 만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그대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명예와 권력까지 가지려고 하다가 감추어진 비리가 드러나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국회의원 출마를 하지 않았을 사람도 많다. 정보공개가 진작 제도화되었더라면 이런 사람들은 그저 탈세를 하고 자식을 군대에서 빼내고, 외제차 타고 골프 해외여행 하면서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 머물렀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직선거 후보자 신상공개 제도는 우리나라의 정치엘리트 충원 과정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이 처음 도입되는 16대 총선 출마자들의 ‘억울한 사정’은 역사가 짐 지워준 운명이다. 중학생 시절에 벌써 대통령을 꿈꾸었다는 어느 전직 대통령처럼 일찍부터 정치에 뜻을 둔 젊은이들은 세금을 잘 내고, 현역으로 병역의무를 다하도록 노력하며, 동네 파출소라도 피의자로서 출입하는 일은 없도록 처신을 삼가야 한다.

온 사회가 다 썩었는데도 정치인들에게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항변은 아무 소용이 없다. 권력에는 언제나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사회 전체가 부패의 늪에 빠져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에게 보통사람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게 싫은 사람은 정치를 그만두면 된다.

2009/06/01 17:35 2009/06/01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