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자 한 분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상의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한 대화였지만, 몇 가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회적 현안에 이르러서는 대화가 사뭇 격렬해기도 했다.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미 있는 것은 그 차이를 해소하고자 동원한 방식이었다.
대화가 부닥칠 때마다 우리는 서로 '상식'을 말했다.

NPC를 처음 정초할 때 생각이 났다. 우리는 그때도 자주 '상식'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우리는 '네티즌의 상식'을 믿었고, NPC의 미래를 그 '상식'에 걸었다. 지금도 그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NPC의 믿음이다. 나는 지금도 '네티즌의 상식'을 굳게 믿고 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상식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그러나 나는 많이 당혹스러웠다. 두 사람 모두 똑같이 '상식'을 말하고 있었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그 상식 사이에는 끝내 좁혀지지 않는 어떤 간극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 우리의 대화는 매번 서로의 '상식'을 확인하는 그 지점에서 좌초되곤 했다.

'네티즌의 상식'이 바른 언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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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가 웹에 둥지를 튼 이후 참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DJ 2중대' '전라도 찌라시'라는 평가에서 시작하여, '수구꼴통' '조선일보 2중대' '한나라당 알바'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최근에는 '기회주의' '변절자'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모양이다. 모두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이야기들이다.

지난 기사를 아무리 뒤지고 살펴봐도 NPC는 예전이고 지금이고 변한 게 없다. NPC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NPC 고유의 시각을 놓아본 적이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 바른 언론과 건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했고, 일관된 자세를 견지해 왔다.

그랬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는지 모른다. 시류에 편승하여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사람들에게 있어 NPC의 변하지 않는 자세는 충분히 '이적행위'로 비쳤을 법 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NPC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바로 거기서 기인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NPC의 어떤 기사도 'DJ'나 '조선일보' '한나라당'을 위해 쓰인 적이 없다. 사실 지금까지 숱한 비판이 쏟아지기는 했으나, 그 가운데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비판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우리 편이 아니므로 적이다'는 패거리주의 논리가 다였을 뿐이다.

패거리주의 논리와 상식의 논리

최근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 사회에 상식이 부재한 탓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 우리의 부박한 '패거리주의' 문화가 있다. 패거리주의는 자기 패거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를 원천적으로 불허한다. 때문에 이러한 패거리주의에는 '의사소통 가능성'으로서의 상식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노무현 정부 들어 부쩍 유행하기 시작한 '코드론'도 우리 사회 저변에 팽배해 있는 패거리주의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코드가 맞아야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패거리에서만 통하는 '방언'이 상식을 대신한다. 코드가 다른 사람과의 생산적인 담론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 "내 말뜻은 그게 아니었다"고 항변하곤 한다. 본래 의도가 잘못 전달되고 있다면서 전달자인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두번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의도가 매번 그렇게 잘못 전달되고 있다면 그것이 꼭 언론만을 탓할 일은 아니겠다. 그것은 노 대통령의 '코드'가 패거리주에 빠진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NPC가 패거리주의가 아니라 '상식'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패거리 논리가 아니라, 누구하고라도 유의미한 담론이 가능한 상식의 논리가 통하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것을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언론의 길이라고 믿는다. <2003-06-01, 통신보안>


 

<덧붙이는글> 의무방어전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편법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형식이 의식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모쪼록 그래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2> 전혀 엉뚱한 포스팅은 아닙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머물러 뒤를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말한 시인이 있습니다. 새로운 글쓰기가 저어될 때는 지난 글을 통해 현재의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도 무용한 일인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에서 리바이벌하는 글입니다. 현재 블로고스피어에서 일고 있는 여러가지 논란을 지켜보면서, 저 글의 '언론'과 '네티즌' 대신에 '블로고스피어'와 '블로거'를 넣는대도 그 의미가 크게 어긋나지 않겠다 여겨져서입니다.
2009/02/23 23:55 2009/02/23 2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