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댓글로 "조갑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자신은 '조갑제를 삻어한다'는 단서를 붙여서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글을 약간 정리하여 옮깁니다.


조갑제닷컴

조갑제닷컴 www.chogabje.com


조갑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구요? 그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인물에 대한 평가를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는 조갑제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특히 자신의 주관도 없고, 그 결과 당연히 주체성 혹은 정체성도 없이 시류에 휩쓸리고 다중에 영합하는 이즈음의 세태에서는 보기 드물게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역사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자기 정체성은 역사의 발전을 추동하는 힘입니다. 굳이 정반합의 변증법적 논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도저도 아닌 주장이 역사를 만들어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진중권 관련 글에서 나온 질문이니 진중권의 경우를 들어 말하자면, 이건 이를테면 조갑제가 있었기에 진중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진중권이 조갑제에게 바치는 헌사,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익히 아시겠지만, 진중권은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책에 대한 비판을 담아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두 권의 책을 만들어냅니다. 내가 보기에 이건 진중권이 조갑제에게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입니다. 게다가 내가 듣본 게 짧은 탓이겠지만, 이같은 일은, 다시말해 어떤 이의 책을 두 권 분량의 책에 담아 비판하고 나선 사례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헌사라도 대단한 헌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가 아는 조갑제는 매사가 반듯한 사람입니다. 다른 이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알 뿐만 아니라, 아니다싶은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언제나 분명하고 거기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기자와 논객이 갖춰야 할 자세로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도 별로 많지 않다고 봅니다. 마땅히 배워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예컨대, 며칠 전에 옮긴 김동길씨의 글 가운데 나오는, "조직이 없이 그토록 거대한 광장의 행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겠느냐?"는 식의 인식[footnote]나 혼자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하나의 정부”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존재한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정부보다 훨씬 유능하고 조직적이고 열성적인 또 하나의 정부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국민장이니 만큼 정부의 도움이 있기는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정부의 능력만 가지고는 이렇게 완벽한 장례를 치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역시 보이지 않는 정부의 조직력이 크게 작동한 것이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김동길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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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2.mintong.org/596 [/footnote]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김동길씨도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이들이 살아온 사회에서는 그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갑제의 문제는 조갑제가 아니라, 조갑제를 넘어서지 못하다는 데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보면 조갑제는 마치 '악의 화신'이나 되는 듯 합니다. 특이한 것은 이같은 경향이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조차도 조갑제 하면 마치 벌레 보듯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수구 꼴통'이라면서 말이지요. 자신은 그 정도까지 '수꼴'은 아니라는 얘기인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치들이야말로 오히려 더 수구에 더 꼴통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어보입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 조갑제의 문제라고 떠벌이는 문제의 대부분은 실은 조갑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갑제를 넘어서지 못 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진중권이 10여년 전에 조갑제를 넘어서기 위해 그에게 두 권의 책을 써서 바쳤지만, 아직도 여전히 조갑제가 벽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조갑제의 문제는 그만큼의 자기 목소리를 가진 기자 혹은 논객이 없다는 사실의 방증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조갑제는 우리 언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다루면서 '서거'라는 표현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 거친 방식으로였기는 하지만, 그 취지에서만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른 지적이었습니다. 대중이 조갑제를 노망 든 노인네 정도로 폄하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언론이 왜 조갑제를 불편해 하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자, 이 나라 언론 종사자들이 여전히 기자 조갑제를 넘어서지 못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조갑제의 문제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뚜렷한 자기 주관을 가진 기자 혹은 논객이 있다면 문제 자체가 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 가운데 혹시 조갑제를 넘어서는 기자 혹은 논객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분이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나는 도무지 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요.  



2009/05/31 21:16 2009/05/3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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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김지하, 저 촛불의 정체는 무엇인가

    Tracked from 하민혁의 민주통신 2009/06/01 11:32  삭제

    시인 김지하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묻고 있다. "나의 이상한 취미"라는 칼럼을 통해, 유순하고 착한 자신을 반골로 만들었던 시대를 말하면서다. 김지하는 지금 세상에서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했음에도 그 바뀌고 변한 시대와 세상을 리드할 생각은 전혀 없는 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케케묵은 이야기나 우려먹으려 드는 우리의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김지하의 글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자양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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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얘는정말답이없다 2009/06/01 0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뚜렷하게 나아간 히틀러도 좋아할 간지;

    • 간질난다 2009/06/01 0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노무현->노꼴통->노틀러

      뭐 이렇더라는. 히틀러나 노무현이나 공통점은 쥐똥만한 자신만의 신념을 다수에게 강요하고 나선 몽상가이자 권력자라는거..

      이런 점에 있어서 조갑제는 그나마 덜 위험인물임.

    • 하민혁 2009/06/01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위에 답 없는 애/
      시류에 편승하고 다중에 영합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히틀러라난..

  2. 아하 2009/06/01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는 말씀.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가 있었기 때문에,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존재할 수 있었겠죠.

    그 책 읽어봤는데, 별 내용 없던데요.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의 부록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읽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의 패러디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면 오늘의 진중권은 조갑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모양이네요.

  3. 대청소 2009/06/01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갑제나 진중권이나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동급들 아닌가? 소통의 문제다..친일파들은 친일논리펴는 것이고 맑스주의자들은 맑스논리펴는 것이고 사이비들은 사이비들 논리펴는 것이다...결국 패거리주의 논리밖에 안 된다. 맞는 건 맞고 틀린 건 틀린거라고 말하고 인정할 때에 소통은 가능하다. 개독집단이나 노똥집단이나 동급집단이고 뉴또라이집단이나 한나라당집단이고 동급집단이다. 소통은 양심적인 인간들이나 가능한 말이다.

    • 하민혁 2009/06/02 0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단 하나도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 다만,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하실지.. 그것만이 궁금하네요. 혹시 나중에 들르시게 되면 힌트라도 살짝 주고 가시길 바랍니다.

      <덧> 저쪽으로 석달 열흘을 가라~ 뭐 이런 건 말구요. ^^

    • 똥퍼 2009/06/05 0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민혁 >> 니 똥은 니가 치워라....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겠네요...

  4. 엠프 2009/06/01 1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지율스님이 100일 단식 이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올때
    조갑제가 대한민국 기자는 다 죽었다고 했지요.

    '100일 단식' 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이 한쪽의 '주장'만을
    그대로 신문지상으로 옮겼으니까요...그것은 좌파,우파 모두 똑같았습니다.
    조중동도 그 말로 노무현을 압박했으니까요...

    전 그때 조갑제가 한 지적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단식으로 건강악화'
    '생명에 지장 우려하는 소리 높아'

    -> 이정도라면 별 말안하겠습니다.
    그런데,'기자'라는 분들이 무조건 '단식 90일째' , '단식 100일' 이라는 식으로
    보도를 하니 참 황당했지요...그리고 그런 언론의 자세를 지적한 건 조갑제가 유일했지요.

    • 하민혁 2009/06/02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하는 얘기입니다. 조갑제씨가 여전히 훈수를 둬야 하는 지식인 사회, 특히 덜 떨어진 기자들이 결국은 조갑제씨를 붙들고 있는 거라고 말이지요.

  5. 윤준석 2009/06/01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가 사건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조갑제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편으론 이런것이 전문직 종사자들의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종합적인 판단과 함께 논한다면 혹 미덕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 없이 일면 기자정신, 논객의 태도 이런 것을 찬양하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그저 빨리 달리는 본령에 충실하기만 하면 무조건 좋은 자동차인것은 아니겠죠? 하물며 기자니 논객이니 하는 직종(?)은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숙명으로 삼는 직업입니다. 마땅히 그 투철한 기자정신은 올바른 철학과 함께 펼쳐져야만 비로소 본받을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배울점이 있다는 것과 본받을만한 사람이라는 말은 상당히 다른 뜻입니다. 주인장께서는 그 두개를 섞어 사용하시어 읽는 이를 본의아니게 허방에 빠뜨리고 계십니다. 게다가 '서거'의 예를 드신 것은 주인장의 철학까지도 의심스럽게 만듭니다. 남의 초상집에서 한낮 단어사용을 논하는 것이 투철한 기자정신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상주에게 악감정을 표출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초상집가서 맞춤법따위를 손보고 계시면 아무도 투철한 국어사용 정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냥 망자에 대한 원한때문에 트집잡는걸로 밖에는 안보이죠. 통상 이런짓을 해놓고도 기자정신이라고 우기는 기자들이 있기는 하지만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지적할 필요가 있는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분별력은 기자정신 이전의 기자의 기본자질이 아니겠습니까?

    투철한 기자정신이라면 올바른 철학이 함께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저 저와 생각이 다른 국민들을 빨갱이로 매도할 생각으로 '서거'따위를 문제삼는 기자정신이라면 기자가 아니라 '기자 오타쿠'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것입니다.

    • 하민혁 2009/06/01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의합니다. 지적하신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많이 피곤한 상태에서 잠들기 직전에 쓴 글이다보니 제가 봐도 거친 부분이 더러 뵙니다.

      다만, '서거' 표현에 대한 부분은 저도 관련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좀 무분결하게 쓰였던 게 사실입니다. 경향신문의 경우 호외로 발행한 헤드라인 기사의 제목이 "노무현 대통령 투신-서거"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게 명백한 비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http://blog.mintong.org/583

    • 윤준석 2009/06/01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대치않게 빨리 깔끔한 답변을 주시니, 저도 인정할건 인정해야겠네요...
      '서거'가 비문이고 무분별하게 쓰였다는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이 시국에 굳이 어법을 지적하는 행위에 담긴 정치성이었습니다.
      다만 쥔장님의 답변을 들으니 사태를 정확히 보도해야 하는 기자가 세평을 고려하여 비문을 남발해서는 안된다라는 입장에서는 건전한 비판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조갑제라는 벽때문인지, 이 부분에서는 저도 판단이 어두워져 '서거'를 문제삼는것 자체가 전부 정치적인 행위라고 몰아갔던 것 같습니다. 이 점 잘못을 인정합니다.(다만 조갑제씨의 지적은 분명 정치적 의도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쥔장님의 철학 운운은 답변을 들으려는 저의 도발이었습니다... 거친 언사가 혹 심려가 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 하민혁 2009/06/01 2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침 다른 이의 블로그에서 댓글 놀이를 하고 있던 참이어서 저도 아까 충분한 답을 드리지 못 했는데요. 그러니까 님이 지적하신 '서거'라는 표현을 조갑제가 문제삼고 부분에서 제가 하고싶었던 얘기는 이런 거였습니다.

      제가 쓴 글과 조갑제의 글을 비교해보심 알겠지만, 저는 '서거'라는 표현이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데 반해, 조갑제씨는 '서거'라는 표현 자체를 아예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도,

      "거친 방식으로였기는 하지만, 그 취지(문제의식)에서만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른 지적이었습니다."고 말했던 겁니다. '거친 방식'이란 바로 그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던 셈입니다. 물론 제 글 자체도 거칠기는 했지만요.

      사실 이 문제는 저도 그렇고 조갑제씨도 그렇고 왜 저런 주장까지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닌 문제입니다. 당시, 일부 기자와 블로고스피어 일각에서 노통의 죽음에 대해 왜 서거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사망이라고 말하느냐는 주장이 항창 비등했습니다. 이해하지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건 많이 억지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제 글에서도 왜 그런 상황이 빚어졌는지를 설명하고 있지만, 조갑제씨 또한 그 부분에 대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박통이 죽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처음에 '유고'라는 표현을 썼으니까요.

      그런데도 언론은 마치 그것이 무슨 대역죄라도 지은 양으로 이후에는 일제히 '서거'라는 표현을 남용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위에 링크한 제 글에서 설명하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무튼, 여기서 제가 하고싶은 말은, 만일 언론이 그렇게 여론에 춤을 치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조갑제씨의 저 주장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게 본문 글의 논점이자 핵심 요지입니다. 언론이 조갑제같은 이를 역사의 뒤안길에서 자꾸 불러내고 있다는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여전히 유의미한 담론을 생산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쪽 민주통신 블로그에서도 올린 얘기지만, http://blog.mintong.org/592 오죽 했으면 김지하같은 이가 "나의 이상한 취미"라는 글까지 써서 제발 자신을 이 '이상한 취미'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면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까요? 오죽했으면 자신의 반골이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을까요?

      김지하의 얘기는 그만큼이나 지금 우리의 지식인 사회가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과거의 성과에 기생하여 그걸 뜯어먹고 사는 짓을 하고 있다는 지적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과거의 사람들을 과거로 묻어버릴 지식인이 없다는 거지요.

      허접한 얘기가 살짝 길어졌습니다. 무튼, '조갑제의 문제는 조갑제를 넘어서지 못하다는 데 있다'는 이 글은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쓰인 글이었습니다. 단순히 조갑제 한 개인의 문제만을 말하고자 했던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제가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닌 터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잘못이 없지는 않지만, 다시한번 취지 자체는 그렇더라는 말씀을 드리고싶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꾸벅~

  6. 다크메이 2009/06/01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민혁님의 말대로 심지가 굳고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을 일반인들이 욕하고 미워할까요? 제가 보기엔 조갑제란 사람이 하민혁님의 말에는 귀기울이는지 몰라도 결코 자신과 생각이 다른사람들의 말에는 귀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 조갑제란 사람은 이중의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관용의 잣대를 남에게는 엄격의 잣대를...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자들의 일반적인 행태죠. 그러다보니 모 신문사의 임원이 증거 불충분일때와 노대통령이 증거불충분일때에 논조가 다르죠.

    아~ 그건 밥줄때문에 그런건가요? ㅎㅎ

    • 하민혁 2009/06/02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업 중에 짬짬이 답글을 달다보니 저도 모르게 답글을 빠뜨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곳에 보니 그동안 답글을 드리지 않은 글이 꽤 있었네요. ^^

      조갑제씨의 경우 딱히 밥줄 때문에 저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념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을 때려잡으려는 이들에 대한 반작용이 더 큰 때문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이건 그냥 간단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쉬이 알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데요. 조갑제는 이른바 노빠 진영에서는 때려잡아야 할 대상입니다. 같은 하늘을 이고는 거의 함께 살 수 없다고 할 정도지요. 오죽했으면 악의 화신인 양으로 묘사하고 있을까요.

      자,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구요. 님이 조갑제씨의 경우라고 한번 생각해보시라는 얘기입니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무조건 나가죽으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려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님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제가 보기엔 모르긴 몰라도 님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워 이기려 들 것입니다. 나는 조갑제씨의 경우가 지금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여기서 이중의 잣대니 뭐니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7. 종종 들리던 사람 2009/06/02 0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지난번에도 글을 한번 남겼었는데
    꼬박꼬박 댓글을 다시니 참 열성적이시네요.

    밑에 달린 국민장에 대한 이야기 님께서 쓰신 글 맞나요?
    공감이 많이 되어 댓글 남깁니다.

    조갑제와 진중권 둘 다 너무 극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갑제를 매우 매우 싫어하지만 그가 쓴 글을 다 읽지는 못했으니 '아마도' 배울점은 있을지도 모르겠다....님의 글을 읽고 생각해봅니다.

    수고하세요

    • 하민혁 2009/06/02 0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먼저, 하단에 달린 저 글은 김동길씨가 쓴 글을 옮긴 겁니다. 본문에 주석으로 달려 있잖아요. 그리고 저 글은 김동길씨의 생각이 저와는 살짝 다르다는 걸 짚고 있는 글입니다. 죄송합니다. 흑~

      조갑제씨나 진중권씨나 둘 다 연극 무대에 오른 삐에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연극을 위한 하나의 소품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소소한 득은 챙겨가질 수 있겠지만 주인공은 어쨌거나 따로 있으니까요.

      댓글 고맙습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

  8. ton 2009/06/02 0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자는 조갑제의 배울점 중에 정체성을 들었는데요..

    단지 시류에 편승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정체성을 높게 봐야한다라는 글은 저에겐 설득력이 없습니다.

    만약 정치판에서 어떤 정치인이 "난 민주주의적인 절차에 반하는것은 모두 거절하겠어"라는 납득할만한(그것이 무조건 옳다의 문제가 아닌)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동의하겠습니다만, "난 이쪽 이익집단에 힘을 주겠어" "난 반대 이익집단에 힘을 주겠어"라는 정체성이 있다면 경계해야하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조갑제의 이번 포스트는 단지 상황의 표현 문제에 대한 지식적 접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어거지로 정체성의 표출로 바라본다면 앞서 정체성에 예를 든 것중 경계해야할 것인 후자에 속할 것이구요.

    그렇다면 필자의 글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조갑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 하민혁 2009/06/02 0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갑제도 그렇고 조선일보도 그렇고 저는 자기 색깔 분명히 갖고 있다는 건 배워야 할 점이 맞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도 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이해했습니다. 접수하겠습니다.

      다만, 님의 주장 가운데 님 스스로가 빠져 있는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 예컨대, 님은

      "난 이쪽 이익집단에 힘을 주겠어" "난 반대 이익집단에 힘을 주겠어"라는 정체성이 있다면 경계해야하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하셨는데요. 그런 자가 있다면 당근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님의 이같은 바운다리를 조갑제씨가 과연 인정할까요?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왜냐면 적어도 내가 보는 조갑제씨는 님이 말한 저런 동기에서 자기 주장을 펴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보는 때문입니다.

      이 글은 조갑제 개인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왜 지금 이 시기에도 조갑제인가?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글입니다. 저는 그것을 조갑제를 넘어서는 이가 없다는 데서 찾고 있는 거구요.

    • ton 2009/06/02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를 든것은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의 단편적인 예를 든것입니다. 조갑제와 이 예를 연결한것은 예의 세부적인 내용이 아닌 경계해야할 정체성을 가지고 있냐?/않냐? 의 문제로 해석해 주시길 부탁드리구요. 만약 세부적인 내용을 연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신다면, 저의 조갑제의 이전에 단편적으로 봤던 특정정책에 대한 논조변화가 단지 특정 이해집단과 결부되어있었다는 경험 때문이고, 그 결과 조갑제의 대한 무시의 결과로 그의 정체성을 가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자가 판단하고 있는 조갑제의 정체성이 궁금한거구요..

      물론 조갑제의 개인에 대한 글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필자의 글에서 그의 정체성이라는 부분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빈약한 근거가 되는 부분을 채워주길 바랬던겁니다.

      또한 조갑제를 넘어서는 이가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진중권이 이기지 못하고 모두가 '악의 화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그리고 국민여론이나 시류에 반하기 때문에 "조갑제는 모두를 넘어선다"라는 명제를 뒷받침 하기에는 어렵다고 봅니다.

      단지 조갑제가 지금 이슈화되는 것은 상황이 그럴만해서 그런거다 정도의 일로 치부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님의 이같은 바운다리를 조갑제씨가 과연 인정할까요?" 라는 것은 제가 질문한 것(조갑제의 정체성에 대한 필자의 인식)에 대한 답과 필자의 글에 설득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답변은 "필자의 답변을 제가 과연 인정하고 수긍할까요?"라는 질문으로 되돌릴 수 밖에 없군요.

    • 하민혁 2009/06/02 0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사실 저도 저 글을 쓰면서 지금 님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논거가 빈약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붙여둔 논거도 약강은 어거지성이었구요. 실은 그래서 저 글이 이곳에 쓰인 겁니다.

      지금 두 개의 블로그를 크로스해서 운영 중인데요. 그러니까 이곳에 있는 글들은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쓰는 글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거의 간단한 멘트만 달아서 주로 참고용 글을 올리는 공간인 셈입니다. 글도 댓글 수준에서 그냥 한 달음에 쓰는 글들이 대부분이구요. 변명 겸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9. st7253's 2009/06/02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인 블로그에서 제대로 된 글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10. 조이 2009/06/05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갑제의 문제는 조갑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조갑제를 허용하는 카르텔 전체에 대한 문제라고 봅니다. 이 카르텔이 지향하는 방향 이외의 길로 나가지 못하는 조갑제는 단지 외치는 자일 뿐 님께서 얘기하는 정체성이나 자기 주관 뭐 이런 얘기 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진정한 논객은 자신의 철학이나 사고를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논리'라는 것이 있지요...
    이 논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잣대'와 '기준'이 그 근간이 됩니다.

    하지만 조갑제 이 사람은 그저 자신을 지탱해 주는 카르텔의 정당성을 포장하기 위한 변명을
    '논리'로 포장하고 있는 것일 뿐...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배설과 세뇌만이 가득합니다.
    이 사람이 논객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이 카르텔의 지지와 네트워크 없이는 불가능 하지요.

    조갑제라.....

    저는 그냥 껍데기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겐 너무 과분한것 같습니다.

  11. 뉴라이트정체성 2009/06/16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근히 조갑제 매니아 짓 하고 있는 글과 리플이 난무하는군.

    조갑제는 일본 우익 한국 지부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내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남북간에 전쟁을 선동하는 표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그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대한민국의 국방시스템에 문제가 발견되는 상황에는 한 발 물러선다.

    이번 롯데월드 건만 봐도 다른 극우인사들이 이명박 정권이 재벌을 위해 국방을 희생한다고 비난을 퍼부어도 조갑제 입은 자물통이다.

    전쟁을 충동하길 좋아하면서 대한민국 자체의 국방력 강화 문제에는 분석력을 발휘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느다. 흑백논리로 떠들기 좋아하던 자가 자물통을 열더니 갑자기 확률을 들먹인다.

    대체 속마음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전쟁의 결과 남측 승리가 아니라 남북 공멸했을 때, 한반도에 통치권 공백화된 경우 최소한 남한 지역은 일본이 접수한다면 피박은 면한 거라고 보는 심리가 분명히 밑에 깔려있다.

    실제로 어차피 중국한테 다 먹히느니 반쪽이라도 일본 땅 되는 게 낫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영감쟁이들 몇 명 봤다. 조갑제의 속마음도 아마 그들과 같은 수준일 것이다.

  12. 쾌남 2010/06/16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갑제는 이성적인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