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은 3월 2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선진화재단-좋은정책포럼 공동주최의 토론회 "진보를 말한다"에서 나온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의 발언 전문입니다.

이 발언문과 다른 별도의 공식 발제문은 첨부파일로 올려놓았습니다.
http://www.sdpnet.org/?document_srl=3649 (새 창으로 열기)


요즘 저가 꼭 무슨 내부 고발자 같습니다. 의리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는 보통 말년이 외로운 모양이던데요... 저는 내부 고발자 안 할랍니다. 그래도 이렇게 불러주셨는데, 오늘만 하고 내일부터는 안 할랍니다.

저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한국 사회의 변화가 너무 빨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럽 선진국 사람들이 3대에 걸쳐 경험한 변화를 우리는 한 대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오직 너무 빠른 사회 변화에 잘못이 있는거지요.

사회 변화와 함께 좌파에도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1920년대 코민테른의 좌파, 1950년대 사회주의인터내셔널 성립 시기의 좌파, 1980년대 녹색당의 신좌파가,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말, 21세기초에 한꺼번에 연속 출현하였으니, 어찌 감당을 하겠습니까?
 

주대환

주대환


저는 30대에 맑스-레닌주의자였다가 40대에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었지만, 50대에 걷는 서울거리, 촛불 시위가 벌어지는 서울 거리, 포스트-모더니즘의 분위기가 넘쳐 흐르는 서울 거리는 저에게 마치 이국(異國)의 거리와 같습니다.

굳이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이렇게 십년 터울의 형제처럼 삼대(三代) 좌파가 탄생하여 지금은 삼대가 한 지붕 밑에 대가족을 이루어서 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삼대는 서로 대화가 되지도 않고 이해나 소통도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도 동거(同居)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과제가 다르고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철학적 배경이 다른 좌파를 한 세대가 경험을 하다보니 헛갈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좌파는 먼저 분가(分家)를 해야 합니다.

'진보신당' 같은 경우가 대표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철학과 사고방식이 다른 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사이 좋게 살려고 하니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은 다하지만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가 느끼기에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좌파는 2세대 좌파, 사회민주주의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사회, 문화적으로는 후진국인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하고, 실제로 그 이상(理想)을 실현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회민주주의는 아직 잘 세력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우선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 세계사를 꿰뚫어 설명하는 대이론이 없으니 지식인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철학적으로 경험론에서 출발하다보니 성리학적인 지적 전통과도 맞지 않습니다.

그런가하면 지식인들이 유학을 한 선진국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현실이 되고 사회민주당은 스스로 이룬 것을 지키는 데 급급한 보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낡은 깃발이고 매력이 없습니다. 자기도 세계 지성사의 첨단을 가는 사상가들의 최신 이론을 읽고 함께 논하고 싶습니다.

반면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사회민주주의가 선진 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노동자, 서민 대중에게는 실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사회민주주주의가 인기가 있는데, 먼저 지식인 사회에서 세력이 형성되지 않으니 대중 정치의 시장에 진출해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좌파 활동가들은 그 동안 민족민주운동을 해왔습니다. 즉 후진국형의 좌파였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저발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후진국, 식민지 종속국의 좌파는 관념이야 아무리 과격해도 몸으로 실천하는 건 민족민주운동입니다. 민족이나 국가의 대외적 자립, 민주주의가 그 목표였습니다. 그러니 머리는 급진 좌파면서 몸은 얼마든지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북적인 정서로 물든 민족주의(NL)와 혁명적인 열정에 들뜬 민주주의(PD)가 지금까지 좌파의 양대 흐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유주의자들, 중도파들, 그리고 일부 지방 보수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국의 진보였습니다. 정치는 호남 보수 세력, 중도 개혁 세력이 하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좀더 진보적인 사람들이 나누어서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발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몇몇 기업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는 노키아와 함께 삼성과 LG가 세계 휴대폰 시장의 3강 구도를 형성하였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보급율에다 대학진학율 85%의 나라에서 시민사회는 성장하여 민주주의는 되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와 함께 빈부격차가 커지고 양극화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늘어나고 노동자들 간의 임금 격차는 엄청납니다. 자영업자는 급격히 몰락하고 중산층은 붕괴하고 있습니다. 자살율은 세계 최고입니다. 그만큼 살기 힘들고 불안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지국가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며, 그것을 실현할 지적인 역량과 정치세력이 필요하고,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가 지금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좌파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진보가 이제 사회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진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민주운동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민족민주운동을 해온 사람의 머리 속에는 그 시절이 엇그제 같고 그들의 사고 방식은 고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청춘과 동지 세계와 단절을 못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권력의 분위기라도 느껴 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아무리 '진보의 재구성'을 외쳐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방법은 우리 세대는 이렇게 살다가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1987년 이후에 성인으로서, 시민으로 살기 시작한 세대, 지금 갓 40대에 들어서는 사람들과 30대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진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였기 때문에 해석의 넓은 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르딕 모델에 주목하는 사람들부터 죠스팽-라퐁텐 노선을 신봉하는 사람, 그리고 제3의 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까지 모두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성(知性)과 정책 대안의 풍부함과 정치적 세력을 함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폭넓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형성이 필요합니다. 어느 노선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의 실현 가능성입니다.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가운데 결국에는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간혹 '국민의 무지'를 걱정하는 지식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가 2004년 5월 17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했는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44.8%,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39.2% 기타 2.8%, 무응답 13.2%였습니다.

사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유럽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핀란드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창의성 위주의 교육을 하는데 학업 성취도가 세계 제일이라는 겁니다. 또 덴마크의 노동정책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고,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나라가 현실에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진보'는 지식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사회민주주의운동을 먼저 지식인들이 시작하면 노동자들은 왜 이제사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노동운동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있습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은 드는데 "어디로 가자"고 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에서 먼저 사회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이고 시민운동을 거쳐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할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정치로 진출하자 마자 김대중 직계, 노무현 직계, NL, PD를 다 제끼고 야권의 중심 세력이 될 것이며, 또 그럴 때만이 한국의 사상계와 정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한국을 선진국으로 발전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진보', 즉 사회민주주의가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보수'가 구보수와 차별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보수가 구태의연하면 진보도 구태의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진화(進化)의 퇴행이 양편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흔히 스웨덴식 노사대타협을 꿈꾸지만, 그 이전에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하면서 국민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민족민주운동으로서 진보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운동으로서 진보의 미래는 있습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지금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입니다.





 
2009/05/08 16:22 2009/05/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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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100분토론, 진보가 보는 한국 진보의 미래

    Tracked from 하민혁의 민주통신 2009/05/08 16:41  삭제

    그림 만든 아해가 손석희 안티인 모냥이다 ^^엠비씨 백분토론이 연속 기획으로 선보이고 있는 "한국사회 진단과 미래 논쟁"이 지난 주 1편 '한국 보수의 진로'에 이어, 이번 주에는 제 2편 '진보가 보는, 한국 진보의 미래'를 다루었다.이번 주 백분토론의 패널은 노회찬(진보신당 대표), 최재천(전 민주당 국회의원), 박석운(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손석춘(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장), 홍종학(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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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군의땅 2009/05/14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잘 읽히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