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역감정’을 말하는가 (1)
- 어용언론과 지식인들의 '지역주의' 부추김 현상을 경계한다
넘버쓰리 하민혁, haawoo@minjoo.com  
강준만의 ‘노무현대통령 만들기‘


강준만은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라는 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섰다. 그러므로 그의 선택이 얼마나 합리적인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 책을 통해 강준만이 보여주는 근거와 논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 책에는 어떤 구체적인 데이터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데이터가 없다 보니 분석 또한 있을 리가 없다. 있다면 오직 강준만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유아론적 강변 뿐이다.

강준만의 이런 강변은 논리가 아닌 선동에 가깝다. 선동은 처음 몇 번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며 몇 번쯤은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주장하고 설득하려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을 일반화하여 그것을 강제하는 방식은 건전한 접근 방식이 아니다.

나는 강준만이 누구를 지지하든 거기엔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가능하다면 그가 조금은 열린 생각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자기만의 폐쇄된 울타리에서 나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다시 한번 새롭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은 강준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절대악과 절대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다. 닫힌 생각을 지닌 채로는 비록 수 천 권의 책을 통해 고래고래 부르댄대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분열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울타리를 깨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강준만이 진정 대화를 원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를 원한다면 그 자신이 먼저 자신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강준만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로 '지역감정' 문제를 들곤 한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야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지금 지역감정 문제를 부각시켜 그것을 단지 이용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많다. 한두 가지만 말해보자.

우선 그들은 지역감정 문제 해결에서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지역감정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때로 그 본질을 왜곡하는 일도 마다 하지 않는다. 지역감정 문제를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 탓으로 돌리는 게 그 전형적인 예이다.

다음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접근 방식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은 늘 지역감정을 입에 달고 다닌다. 때로 그것을 부추기는 짓도 서슴치 않는다. '노무현의 전라도 섬기기'나 '강준만의 경상도 패기'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다소 무리한 접근이라는 것 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가운데 지역감정 문제 해결을 바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노무현과 강준만 또한 그런 점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게 왜 자신들만의 전유물인 양, 다시 말해 자신들만이 지역감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인 양 '사기'를 치느냐는 것이다. 나아가서 왜 다른 사람들은 지역감정 문제 해결을 바라지 않는다는 식으로 사실을 호도하느냐는 것이다.


강준만과 ‘지역감정’


강준만은 자주 '지역감정'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입만 열면 지역감정 타파를 외친다고 봐도 좋다. 마치 자신만이 지역감정 문제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역감정의 볼모로 잡혀 있어 그 해결에 방해가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강준만이 지역감정과 관련하여 하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어보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거나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은 오히려 강준만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주지하다시피 강준만은 자신의 <김대중 죽이기>, <전라도 죽이기> 등의 책과 각종 언론 매체 기고문을 통해 지역감정이 갖는 폐해를 지적하면서 전라도 사람 DJ가 대통령이 되어야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왔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 DJ가 정권을 잡은 지금 지역감정의 골은 과연 얼만큼이나 줄어들었는가? 줄어들기나 했는가? 그 골은 혹시 더 깊어져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지역간 갈등이 DJ 정권 출범 이전보다 나아진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다.

왜 이런 결과인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한 요인일 수 있고 민주당과 DJ가 갖는 한계도 한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요인들보다 더 직접적인 요인은 강준만과 그 아류들의 패착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들이 지역감정의 실체와 본질을 규명하려 하기보다는 드러난 현상을 까발려 어떻게든 그것을 이용하기에만 급급해한 결과라고 보는 때문이다.

사실 해소되리라 예상한 지역감정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더구나 그것이 더 악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면,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이 예상한 바에 대하여 반성은 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게 DJ가 대통령이 되면 지역감정이 해소되리라 주장한 사람이 해야 할 기본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나는 강준만이나 강준만과 같은 주장을 했던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들은 게 있다면 아직도 여전한 남탓 타령과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어쭙잖은 변명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다시 그 '지역감정'을 들고 나온다. 지역감정을 우려먹을 수 있는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그들이 내세운 카드는 전라도 대통령이 아니라 경상도 대통령이다. 전번에는 전라도 사람 DJ가 대통령이 되어야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경상도 사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야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노무현 불가피론'이다.


‘노무현 불가피론’은 궤변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노무현 불가피론은 사실 거의 궤변에 가깝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한번 생각해보자. 전에는 전라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 있으니까 전라도 사람 DJ를 밀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이번에는 또 경상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지역감정이 해소될 수 있으므로 딴소리 말고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게 궤변이 아니고 뭐겠는가?

물론 그게 그렇게 단순화해서 말할 수 없는 거라는 거 안다. 전혀 다른 상황을 두고 동일한 기준을 들이미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강준만이 내세우는 논리보다는 말이 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강준만은 지금 악화된 것처럼 보이는 지역 감정 문제는 단지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며 DJ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이제 지역감정 문제는 한 차원 '승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전에 주장한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전라도 대통령 불가피론'은 아직도 여전히 그 정당성을 의심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강준만 자신의 주장이 비록 정당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전혀 그렇지를 않다는 것이며, 그런 마당에 또다시 동일한 논리를 들어 지역감정 해소를 주장하고 있으니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강준만에 따르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그가 가장 강조해 전하고 있는 부분은 노무현이 경상도 사람이면서도 소위 '전라도 정권'인 DJ당에 있다는 점이다.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할 때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편하게 당선될 수 있는 종로를 두고 굳이 부산을 택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점도 높이 평가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지역감정 문제의 승화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노무현의 강점으로 내세우는 부분은 과연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건 그야말로 자기 편할 대로 갖다 붙인 자기 주장일 뿐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노무현이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은 것이 어떻게 대의에 충실한 행동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런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김영삼이 대의를 저버린 죄인 혹은 파렴치한이라는 역사적인 혹은 국민적 동의가 반드시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김영삼 쪽에서도 노무현이 차용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논리를 들어 노무현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노무현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해 당을 버리고 DJ당으로 들어갔다는 비판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한번 말해보자. 실제로 노무현은 DJ당을 택한 뒤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더 많은 인물은 아니던가?

아마 이런 내 이야기에 발끈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이 DJ당으로 간 게 김영삼을 따라간 것보다는 적어도 지역갈등 해소라는 면에서는 보다 바람직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일정 부분 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전라도 사람인 내가 가진 개인적인 생각일 뿐, 일반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그것을 근거로 노무현만이 지역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은 더더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건 결국 또 다른 방식으로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일이고 선거를 위해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지만 강준만은 이번에도 역시 그 지역감정을 선거에 이용할 작정인 걸로 보인다. <김대중 죽이기>와 <전라도 죽이기>를 통해 '전라도 대통령 = 지역감정 해소’라는 등식을 만들면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는 강준만이 이번에는 또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라는 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또 하나의 더티한 지역감정 이용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는 말은 심심찮게 들어온 소리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말은 범국민적 집단 사기극의 산물은 아닐까? 당당하게 큰소리 칠 수는 없어서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는 주장에 수긍하는 척하거나 잠자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역감정에 감염돼 있거나 그 병균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데에 혈안이 돼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p. 190


“지역감정 이대로 둘 건가?” 라는 타이틀의 허두에서 강준만이 하고 있는 말이다. 사람들이 말로는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그 망국병이라는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강준만은 이 말이 왜 다른 사람에게만 해당하고 자신에게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이 말이 가장 필요한 사람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바로 강준만 자신이다. 그는 지금 자신이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고 하는 범국민적 집단 사기극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그런 것만 같다. 강준만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자.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고 가끔 떠들어대는 수구 신문들은 지역감정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는 더러운 작태를 저지르고 있건만 이를 응징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런 신문은 당장 끊어야 마땅하겠건만 그걸 악착같이 구독해주니 이게 사기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선거만 했다 하면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후보들이 많이 나오고 또 그런 못된 사람들이 대거 당선된다. 이게 집단 사기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은 그걸로 끝이라는 사실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긴 행위에 대해 사회적으로 아무런 응징이 없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런 사람들이 어디 점잖은 자리에 가서는 미친 척 하고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고 지껄여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으니 이게 집단 사기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p. 192

기왕 말이 나왔으니, 욕 먹을 작정하고 한 발짝 더 나가보자.

적어도 정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득을 본 건 어느 쪽이었는가? 그건 혹시 전라도 쪽은 아니었는가? 최근들어 지역감정 문제만 나오면 경상도 사람들은 주눅이 들어야 했고, 지역감정 문제를 두고 전라도 사람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닌가? 지역감정의 정치적인 이용 가치가 훨씬 더 컸던 것은 전라도 쪽이었고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전라도 몰표는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는 없는 건가 말이다.

냉정하게 한번 돌이켜보자. 선거철마다 해묵은 지역감정 문제를 꺼내어 끊임없이 그것을 물고 늘어진 사람들은 대체 어느 쪽이었는가? 강준만은 지역감정을 이용한 사람들로 온통 경상도 사람들만을 들고 있지만 그러나 그건 혹시 전라도 사람들이 더했던 건 아니던가?

적어도 나는 전라도 사람들이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역시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하지만 강준만의 표현 방식을 그대로 빌어 말한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주범일 수도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지금 노무현 선거 캠프(?)와 노무현 홈페이지에서 나오고 있는 주장들을 한번 잘 살펴보라.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는가? 지역감정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날을 찾아보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호남 방문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가 지역감정을 이용하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진 적이 있다. 전라도 표를 의식한 이회창의 행태에 대한 비난이었다. 지역감정에 대한 호소는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이익을 보려 하는 작태일 뿐이라는 게 비난의 주된 이유였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경우는 어떤가? 지금 노무현 만큼 전라도 표 갈이에 열심인 사람이 노무현 말고 또 누가 있는가? 노무현은 전라도 어느 지역의 연설에서 자신을 김대중이라 생각해달라는 말까지를 서슴지 않았다. 이보다 더한 지역감정 호소 발언이 어디 있는가? 지지 연사로 출연한 문성근의 경우에는 아예 눈물까지 글썽이며 '김대중과 노무현의 관계 만들기'에 그 힘을 아끼지 않았다. 지역감정을 이들보다 더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들 말고 대체 누가 있는가? 이게 집단 사기극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DJ 집권으로 지역감정은 ‘승화’되었다?


강준만이나 강준만 추종자들은 나의 이런 말에는 당연히 코웃음을 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야말로 지역 구도 타파의 길임을 믿고 있으며 그 길만이 진실한 길임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기존의 지역주의 구도에서 탈출할 길은 없는가?”라고 묻는다. 그 답은 당연히 “있다”로 나온다. 바로 강준만 자신의 길이다. 그는 “내 말을 잘 들어보시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DJ의 집권 이후 지역감정이 더 악화된 듯이 보이는 점이 없지 않지만 그건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지역감정과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비(非)호남인들이 지난 수십 년간 부당한 차별을 받아 온 호남의 지역주의를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이제 와서 그런 잘못된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 건 DJ의 집권으로 다음 대선에선 호남의 지역주의가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승화(昇華)될 수 있는 전기를 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p. 198


이 부분을 읽으면서 좀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아전인수도 이런 아전인수가 없다. 여기서 강준만은 지역감정 문제를 자기 편할 대로 정의하고 이용한다. 단적으로 말해, 그는 여기서 지역감정과 관련된 문제를 지난 수십 년간의 문제로 한정하여 살피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겨냥한 발언인지는 자명하다. 그것은 바로 박정희 정권 등에 지역감정의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나는 그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거니와,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른 사람의 글에 정리되어 있으므로 굳이 여기서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다. (백성민님의 "나는 왜 김대중을 못마땅해 하는가?" 참조)

내가 여기서 우습다고 말하는 건 강준만이 DJ의 집권으로 인한 지역감정의 악화를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 현상이라 진단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세상에 정리하지 못할 문제가 어디 있을 것인가? 말 바꾸기의 대가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다 보니 강준만은 혹시 그 자신마저 말 바꾸기에 일가견을 갖게 돼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강준만이 ‘전라도 대통령’을 역설하면서 쓴 이전의 어떤 글에서도 저 ‘과도기적 현상’에 대한 언급은 듣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이같은  논리를 들이대는가? 결과를 놓고 말 바꾸기를 하는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다.

<2002-11-25 오전 5:56:10>

 
2006/06/20 12:46 2006/06/2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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