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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이문구의 <유자소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 소설집에는 <유자소전> 말고도 9편의 소설이 더 실려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변사또의 약력>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이 또한 내 사적인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터입니다. 언뜻 신난스러워 보이는 변사또의 삶이 이상할 정도로 가슴 아득한 훈훈함으로 닥아오는 것도 이 때문이겠구요.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단편입니다.

작가네 집 머슴이던 최서방의 고적한 삶을 그리고 있는 <명천유사>는 그러나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못합니다. 작가의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너무 잔잔한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담담한 작가의 시선이 오히려 일말의 거부감을 안겨주고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동만필.1.2>에는 우리의 정치사에 대한 작가의 해학과 익살이 희화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자유당 말기에 민주당의 무슨 국장을 잠깐 지냈다는 사실로 문국장이라 불리는, 그렇게 불리는 것을 적잖이 흐뭇해 하는 문승관과 뚜렷한 이념도 없이 국회의원 출마를 꿈꾸고 있는 이만업의 정치꾼(기실 제대로의 정치꾼도 되지 못하는)적인 성향을 통해 작가는 얼룩진 우리 정치사의 이면과 거기에서 살아가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짙은 페이소스가 깔려 있습니다.

<강동만필.3>은 석촌 호수 부근에서 "더울 때 바깥 만큼이나 더웁고, 추울 때는 바깥 만큼이나 추운 이동식 포장마차"를 하며 살아가는 남씨와 "본색이 농투성이었으나 농사치가 저수지로 수몰되는 바람에" 예까지 흘러 온 서씨, 그리고 뚜렷한 직업없이 "입때껏 생무지로" 살면서 "아무데서나 두루춘풍으로 홍이야 홍이야 해 온 맨탕"인 나, 이 세 사람의 세상살이를 그들이 늘상으로 모이는 호수 주변의 풍경을 배경으로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태와 놀이 문화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사뭇 시니컬합니다. 작가의 재담이야 이력이 있는 터고, 실제로 소설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재담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기왕지사 옮기는 재미 붙인 마당이니, 호수 주변의 풍속도를 그리고 있는 것 가운데서 두어 개를 골라 직접 한번 들어보기로 합니다.
 

듣보실 분만 클릭~




장곡리 고욤나무



<달빛에 길을 물어>는 현장 답사를 통한 야사의 연구가 목적인 야승회라는 재야 단체의 여행 -- 이름하여 '야승회민정기행'에 따라 나섰던 주인공 이명천이 그 중도에서 떨어져 나와 현대판 노예선이라 불리는 멍텅구리배의 섬, 이를테면 한국적인 수용소 군도 중의 하나인 살섬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 TV와 신문에서 그 멍텅구리배의 기사를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었던 적이 있습니다. 헌데 그 기사는 그다지 세인들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여러가지의 의견이 있었댔는데, 이에 대해 소설의 주인공은 '빈곤의 정서, 다른 말로 하면 빈자소인론' 쪽에다 심정적인 동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기사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것은 곧 "가난에 찌들었던 사람들이 결과론자로 정착하여, 일이 되고 돈이 되는 짓이라면 수단과 방법의 곡직을 묻지 않게 되었으며, 인신매매라는 극단적인 현상조차도 자연스럽게 묵과하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여기에서 보릿고개 세대의 어려웠던 삶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헌데 주인공의 저러한 관점을 살섬으로 팔려가는 다홍치마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암시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한 독자의 억측에 불과한 것일까요.


연평도

연평도


어촌에 관한 몇 가지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이 작품에는, 그러나 그것이 여행길을 그리고 있음으로 당연히 나그네의 감상이나 나그네의 여수(旅愁)가 빠질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에는 여행에서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움인.
 

겨울의 여행은 선(線)의 여행이었다. 겨울의 선은 생태적인 비문명성과 생략 처리된 간결미로 하여 한결 호소력이 있었다. 선은 곧 생(生)의 곡절이었고, 보이지 않는 한계의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겨울에 하는 여행은 선의 추적이 그 내용이었다.
차도 낡고 길도 낡았지만 시간은 낡을 시간이 없었다. 낡지 않은 시간 속의 것들은 낡은 것이 없었다. 차는 선상(線上)으로 내닫고, 땟국이 흐르는 세한도(歲寒圖)가 얼비치고 있었다. 굽이마다 폭이 이어지는 그림이었다. 낯익은 그림이었다.

"고기잡어 사는 놈은, 고래등 같던 허우대가 새우등이 돼도록 배를 부려두 바다는 종내 잡지 못허는 벱이닌께."
늙은이는 눈길을 창 밖으로 돌렸다.
"고래등이나 새우등이나 한 가닥 굽은 선이기는 매일반인걸유."
명천도 눈길을 창 밖으로 돌렸다. 하늘에는 해가 낚싯대 두어 간 남짓하게 남아 있었고, 하늘가의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은 저마다 한 가닥씩 선명한 능선을 그어 그 나름의 곡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라, 이 아저씨점 봐, 샥시가 슴으로 시집오는 것두 그래서덜 오는 중 아시는가베. 그게 아니유. 샥시덜두 다 선이 있어서 임자 만나 오는 거지, 그런 식으루다가 무식허게 제 발등 밟어가면서 오는 게 아니라구유."
선이 있어서라. 명천은 다홍 치마를 찾아보려고 사방을 더듬다가 문득 한 선을 발견하였다. 차창 너머로 불쑥 떠오른 물마루, 아득하게 그어진 수평선이었다.

바다 가운데서 바라보는 물마루는 해벽(海璧)이었다. 그리고 영원히 보이는 한 줄기의 선, 무한정의 한정이었다. 해는 이미 그곳에 가 있었다. 어둠의 시작이었다.
바다는 언제나 그 한 줄기 부동의 선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어둠을 펴고 구름을 펴는 일이며, 바람을 보내고 물결을 보내는 일이 모두 물마루의 일이었다. 배가 노래를 부르며 놓아가기 시작했다.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저문 바다를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나는 무심한 바다에 누웠다.
어쩌면 꽃처럼 흘러가고
바다처럼 사라진다.
이승의 꽃이랴 싶다.


연평도

연평도


다홍 치맛자락이 다시 눈결에 띄었다. 어쩌면 그 다홍 치마도 바다에 흘러가는 이승의 꽃일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홍 치마가 정녕 여린 소녀풍(少女風)에도 부질없이 눈뜨는 파란(波爛)과 더불어서 바다에 흘러가는 꽃이라면, 어느덧 속절없이 좌초하여 표류를 마감하는 곳은 또 어디일까. 꽃은 바닷물에서도 자라는가. 꽃은 자라지 않는다. 다 자란 것이 꽃이니까.

석양은 나그네의 하늘인지도 몰랐다. 다홍 치맛자락은 낙조의 물이 두 벌 들어서 다홍빛이 단홍빛으로, 단홍빛은 선홍빛으로, 선홍빛은 다시 자홍빛으로 거듭 피어나고 있었다. 꽃은 역시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피는 것이었다.

날이 풀려서 그런지 바다 가운데에서도 바람이 차지 않았다. 바닷새가 멀리 나가면 날씨를 믿을만하다고 들었으나 바닷새가 보이지 않는데도 물결은 비단이었다. 해파리가 연안으로 몰리면 태풍이 오고, 달무리나 햇무리에 바람기가 있으면 비가 올 조짐이며, 뱃고동소리가 멀리서 똑똑히 들려도 날이 궂을 징조라고들 하였으나, 해파리도 없고, 먼 뱃고동소리도 없고, 바다는 다만 다홍빛도 같고 자홍빛도 같은 낙조만이 소리없이 짙어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해가 들어가고 있네유."
"니열 아침에 나올라면 시방쯤 들어가야 헐테지유."
해가 들어간 뒤에도 물마루께는 여전히 붉덩물이 가시지 않고 있었으나, 바다는 바야흐로 동녘 하늘과 함께 잉걸이 사윈 잿빛으로 바뀌면서 숙연한 표정으로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홍 치맛자락도 적갈색으로 어두워가고 있었다.

배에 불이 들어왔다.
"살슴은 아직 멀었지유?"
"멀었지유."
"멍텅구리배는 남어있겠지유?"
"배야 남어있지유."
"약내 나는 사람은 없더라면서유?"
"벌써 달이 떴네유."
아낙이 달을 가리켰다. 달이 밝았다. 


그리고 기타 여러분



좀 장황하다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소설 얘기를 옮겨봤습니다. 우선은 이문구 하면 떠오르는 게 그의 입당이어서입니다. 가능하면 그의 이야기 하는 양을 좀 많이 들려주고싶었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소설집의 주무대인 대천 지방과 나 사이에 있는 인연입니다.

저 남녘이 고향이었던 내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채 무작정 상경하여(여기서 '상경'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그때의 기착지는 서울역이 아니라 인천항이었으니까요) 첫 외지 생활을 한 곳이 바로 대천 지방이었습니다.

어느 월요일 등교길에 마음이 동하여, 입고 있던 교복과 가방에 든 교련복 한 벌로 도착한 그곳에서 나는 대략 1년 반여를 지냈습니다. 만리포와 연포 사이에 있는 한 작은 포구에서 멸치 잡이 배와 거잇(게잡이)배와 삼치 잡이 배를 탔습니다. 때론 서산이나 대천 등지로 들어가서 농사일을 거들기도 했구요.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시절의 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강산이 몇 번을 바뀐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곳에 대한 풍경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골길,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시골길,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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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입니다. 이문구의 <유자소전>을 읽고 나서 이래 주절이주절이 소설 얘기를 읊어대고 있는 까닭이요. 지금도 내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그곳에 대한 정서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이 도무지 소설인지 내 지난 시절인지를 모를 정도인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천 지방에는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습니다. 몇 해 전, 대천의 해변가에다 땅을 좀 마련한 적이 있습니다. 남녘에서 하고 있던 조선소의 제 2공장을 세워볼 요량에서였는데, 그러나 그 계획은, 갑작스럽게 발표된 정부의 서해안 종합 개발 계획으로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용도가 변경된 그 자리에는 이제 공장을 세울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입게된 경제적 손실은 상당했습니다. 우리로선 그 땅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나 그렇게 해서 받은 그 땅값이란 게 시쳇말로 똥값 만도 못한 것이어서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날강도를 당해도 유분수지, 참으로 절통할 노릇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모든 일이 다 내가 우겨서 비롯된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대천 땅에 대해 갖게 되는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는요.

에니웨이, 정리합니다.

내가 처음 접한 이문구의 소설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관촌수필>이었습니다. 군 입대를 수십여일 앞둔 시점이었는데, 다 읽지 못한 채 군엘 갔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관촌수필> 읽기를 그만 둔 것은 순전히 그 소설에 대한 모종의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생래적이라 할 수 있는 이 거부감은 그러니까 작가가 보여주는 '군자연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다른 글에서 전하고 있는 내 유년 시절 얘기와 이 글에서 드러나고 있는 내 청소년 시절을 보면 아시겠듯이, 나는 생래적으로 '~체' 하는 거를 잘 견디지 못 합니다. 특히 그것이 상대의 대가리에 잘못 박힌 고정관념에서 나온 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당시 <관촌수필>을 읽으면서 그런 거를 강하게 느꼈다는 기억입니다. 확실히 관촌수필에서는 작가와 작중 인물들 사이에 거리감이 있었고 그게 영 밥맛이었고 그래서 끝내 그 거부감을 못 이긴 채 팽개쳐버렸더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유자소전>은 작가의 저런 비릿한 경향성을 벗어나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중심에서 사라지고 작중 인물이 중심으로 떠오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하긴 지금 관촌수필을 다시 본다면 또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저때야 내 의식 수준 또한 모 아니면 도 식의 덜 떨어진 막가파 수준이었으니요).

그나저나, 참 장황한 이야기인 셈인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까지 제대로 읽으신 분은 아마 없지 싶습니다. 나부터도 다른 이가 쓴 긴 글은, 게다가 지 경험담 늘어놓는 글들은 도무지 읽지 않는 터니까요. 무튼, 그런 의미에서 여기까지 읽으신 어떤 이가 있다면 그 이에겐 분명 신의 은총이 함께 할 거라는.





 <덧붙이는글> 없습니다! 더 하면 몰매 맞을 거 같으서.. ^^
   
2009/03/15 04:36 2009/03/15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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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름바다 2009/03/16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이문구 전작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나 그놈의 대표작 관촌수필에서 막혀버립니다.
    우리동네 연작 등 유자소전같이 소시민들의 일상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건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지만
    선비연하는 몇개의 소설들은 읽고나면 몸이 지치더군요.
    그래도 삶이 힘들 때 꺼내들 수 있는 작가입니다.

    • 하민혁 2009/03/16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 관촌수필에서 막힌 게 저만은 아니었는 모양이네요. 반갑습니다. ^^ 내는 늘 내한테 문제가 많은 거겠거니 하는 생각만 했댔거든요. 선비연.. 이 표현이 군자연 하는 제 표현보다 훨 적절한 듯싶습니다. 고맙습니다.

  2. 너바나나 2009/03/17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하늘을 먹어간 건물마다 간판이 여관인 건 서울에 내집이 없는 사람이 절반이란 말 그대로 그래서 그런가보지?
    글쎄, 가서 자봤어야 알지.
    여관마다 내걸은 것이 룸 사우나 선전인데 그건 더러운 세상탓에 때묻은 인간이 흔해 그런가보지?
    글쎄, 가서 해 봤어야 알지.
    해만 넘어가면 그믐날 밤에도 하늘이 훤하게 붉은 십자가가 총총 뜨던데. 그건 세상이 어지러워 빌고 빌어야 용서받을 인간이 그만큼 숱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
    글쎄, 빌러 가 본 적이 웂어서 잘 모르겄는디

    시침때면서 이죽거리는 거이 아주 잼나구만요!


    길어서 이제야 2탄을 다 읽었구만요! 말씀하신대로 2탄이 더 잼나긴 잼나구만요. 그나저나 공장까지!! 못하시는 거이 없는 능력자시구만요~

    • 하민혁 2009/03/17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재밌습니다. 이죽거리면서도 악이 아니 드러나보인다는 게 강점이지요. 내 같은 이는 이죽거리면 그 강팍함이 막 그대로 드러나는데 말이지요. ^^

      <덧> 제가 원래 온몸을 던지는 체질이어서요. 이것저것 기획하고 조직해서 결과 만들어내는 거를 즐겨 합니다. 공장이 딱 그런 거 하는 데거든요. 출판사도 그렇고.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주디로만 부르대는 친구들한테 자주 듣보기 싫은 소리를 하는 게요.

      <덧2> 앗~ 그런데 다 읽으셨다구요? 미안합니다. 앞으론 긴 글 안 쓰겠습니다. 흑~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