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쓰임새까지 좋은 건 아니다. 남루해진 자신의 처지를 애써 변명하는 방편이거나 상대에 대한 비하 내지는 조롱의 도구로 쓰이는 말이 이 말인 때문이다. 

"자존심이 있지. 내가 어떻게 그런.."
- 한갓된 혹은 비루해뵈는 자기변명에서 자주 듣보게 되는 말이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자존심이 박 먹여주냐.."
- 상대에 대한 비하 내지는 조롱의 의미가 가득한 말들이다.

긍정적인 맥락으로 쓰이는 경우는? 없다. 

'자존심'은 그 자체가 원래 부정적인 의미연관에서 비롯되고 있는 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의 모체인 자존(自尊)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존과 자존심은 말 그대로 글자 한 자 차이다. 그러나 그 쓰임은 정반대이다. 자존심이 부정적 맥락에서 쓰인다면 자존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쓰이는 말이다.

자존과 자존심의 차이는 그 말이 지칭하는 주체를 보는 시각의 차이에 있다. 자존이라는 말을 자기 스스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말에는 주체에 대한 외적 평가가 담긴 시각이 전제되어 있다. "나는 내 자존을 세웠다"는 식의 표현은 어색하고 찾기 힘들지만, "그는 그의 자존을 바로 세웠다"는 표현은 쉬이 찾아볼 수 있는 까닭이다.

이와는 다르게 자존심은 주로 자기 변명이거나 자기 정당화 관점에서 사용된다. 외부적 시각인 경우에도 그 말의 주체가 내세운 '주장'의 한갓됨을 지적하는 비판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왜 이같은 현상이 생기는가? 이유는 이렇다.

자존심(心)은 자존(尊)에 심(心)이 하나 박힌 것이다(혹은 심을 하나 심은 것이다).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은 드러나야 하는 것이지, 다시말해 남이 그렇게 봐줘야 하는 것이지 스스로가 그렇게 우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주체가 자존하는 마음이 자존심이며, 이 자존심은 주체의 자존(외적 시각에 의한)으로 발현된다. 때문에 스스로 나서 자존을 주장하려들면 그것은 이내 꼴 사나운 짓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한편 자존(尊)의 근간을 이루는 말이 자존(自存)이다.

자존(尊)은 자존(自存)이 실현되었을 때, 곧 자존(自存)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개념이다. 현실적으로 말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바로 그때다. 그러므로 자존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어디에 빌붙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챙겨가질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자유자재(自由自在)란 이 자존(自存)이 완결된 상태를 말한다. 붓다의 해탈, 예수의 사랑, 마르크스의 인간해방, 공자의 이순(順)이 바로 그 디위고 경지다. 



요즘 들어 '자존심'을 찾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자존(自存)이 힘들어 자존(尊)이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고, 비루해져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자중할 일이다. <통신보안>
2008/08/30 04:37 2008/08/30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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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홉그루 2008/11/22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존심이란 말이 이렇게 쓰이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사전적 의미와 쓰임새가 전혀 다른 말이 있는 게 또한 재미있군요.
    꼴에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자존심이 있지 내가 어떻게......,
    두 경우를 볼 것 같으면 딱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존심이 있기에 사회가 돌아가고 현상이 유지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야말로 자존심 없이 모든 걸 실리와 이해에만 맞추다 보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는 손해(?)를 보면서 알량한 자존심을 가지고 자존을 실천하기 때문에 그나마 품격이란 것도 생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존이 자존심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