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기록하는 이의 '자의성'이 부담스러워서다. 수시로 행간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저자의 '해석'을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다. 아무리 객관을 가장한다 해도 역사란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시각(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자주 앞서는 탓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서 읽기를 그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역사서를 통하지 않고 역사와 마주하거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객관적인 역사 기술서보다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주 챙겨 읽는다. 역사 이야기는 굳이 객관을 가장하지 않는다. 다시말해 그것이 자신의 '해석'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읽는 이의 부담감이 그만큼 덜하고, 읽기의 지평 또한 훨씬 넓고 더 자유롭다.

예컨대, 누구도 <삼국지>를 엄밀한 역사서로 읽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서가 행간을 통해 저자의 '해석'을 독자에게 주입/강제한다면, 이야기 역사는 독자가 작자의 상상력을 즐기는 과정에서 보다 자유하게 혹은 더 생생하게 역사를 추체험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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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고 있다. 한국인 독립혁명가 '김산'의 이야기를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이던 저자가 그리고 있는 책이다. <아리랑>은 엄밀한 의미의 역사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먼저 읽히는 것은 우리의 역사다.

'불화살같이 살아간 한국인 독립 혁명가의 고뇌와 좌절, 사랑과 사상의 피어린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아픈 근세사가 그대로 밟힌다. 그것은 어느 역사서도 기록하고 있지않은 생생한 근세사의 길이다. 바로 이야기 '역사'가 줄 수 있는 강점이자 미덕이다.

오늘 공병호경영연구소에서 받은 메일링은 '역사의 교훈: 병자호란 전후 이야기'다. 주돈식 씨가 쓴 <조선인 60만 노예가 되다>라는 책을 소개하는 글이다. 책을 보지 않아서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소개한 내용을 보면 이 책 역시 이야기 역사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싶다.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라 여겨, 아래에 공병호의 메일링 전문을 옮겨 소개한다.

'역사의 교훈: 병자호란 전후 이야기' 읽기..


 
메일링을 읽고나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 참 살풍경하다. 여기저기 봄꽃이 만개했다고들 하는데, 그 흔한 목련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기껏 지상을 달리는 2호선 전철의 녹슨 철길 아래 꽃이라 부르기도 만망할 정도의 벗꽃 몇 개가 작은 나무에 달려 있을 뿐이다.

<조선인 60만 포로가 되다>는 책을 통해 '이야기 역사 책' 읽기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했으면 하지만,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메일링 하나 달랑 읽고 뭐라 말을 한다는 게 확실히 좀 껄끄럽다. 무엇보다 때를 넘겼더니 배가 살짝 고프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덧붙이는글>1.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아리랑>은 얼마 전 고물상 옆을 지나다가 1천원을 주고 얻어온 것으로, 발행일이 1988년인 3판이다. 그런데 엄밀하게는 '초판 3쇄'가 맞지않나싶다. 1985년에 나온 초판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여서다. 2. 김산, 그리고 아리랑이라는 홈페이지에 가면 김산의 프로필과 김산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2008/04/06 15:02 2008/04/0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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