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기사가 하나 떴다. ‘도대체 난 몇년생일까’ 빠른 1.2월생들의 비애

많은 이들이 공감해마지 않는 내용이다. 댓글만도 벌써 수백 건이 달려 이 얘기가 얼마나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비슷한 방식의 비애가 하나 더 있다. 어떤 만남에서든 통과의례마냥 으레히 겪게 되는 '고향'과 관련한 문답이 바로 그런 경우다. 새로 글을 쓰는 일도 대략 난감하고 해서 기사 내용 중 '나이'를 '고향'으로 바꾸어 한번 옮겨본다.


한국 사람들은 '고향'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첫 만남에서 ‘고향이 어디세요?’ 혹은 ‘어디 출신이세요?’라는 질문을 빼놓지 않는다. 고향을 알아보고 거기서 모종의 동질감을 얻게 되는 때문이다. 고향을 따져 호형호제 하거나 친구로 서열 이동을 하면서 친밀도를 높여간다.

그러나 예외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출생지'와 '성장한 곳'이 다른 경우의 사람들이다.

신 모(직장인·남) 씨는 경북 '대구'서 태어났다. 그러다가 유치원을 들어갈 무렵인 5세 때 '목포'로 이사를 했다. 비애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독특한 억양 때문에 유치원, 초등학교를 거치면서 상당한 고역을 치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학교 생활을 거치면서 자연적인 동화 과정이었든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든간에 어투는 상당 부분 교정되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과정은 무난히 호남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문제가 사뭇 복잡해진다.

고향이 어디냐구요? 그거 좀 안 물을 수는 없나요?

이때쯤부터는 어떤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건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고향'이 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전라도'라고 답한다. 당연히 전라도 사람은 더한 친밀감을 표시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출생지가 경상도임을 확인하는 일이 생긴다.

반응은 이내 싸늘해진다. "전라도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왜 전라도를 고향이라고 말하느냐"는 식이다. 이것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고향'을 묻는 질문에 답하기가 저어되고 그래서 때로는 아예 '대구'라고 답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때도 발생한다. '누구 누구를 아느냐'에서부터 시작하여 또다른 곤혹을 맛봐야 한다. "전라도서 자랐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분위기는 바뀌어버린다.

대학을 나와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특정 지역을 말하는 순간, 어느 자리에서건 다른 지역에 대한 비호감섞인 발언이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자리가 얼마나 고역인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난 세월을 다 설명하라고? 그냥 거꾸로 말해요

광주에서 태어나 부산서 자란 김 모(회사원)씨도 신 모씨와 비슷한 경우를 자주 당한다. 이런 일을 자주 겪다보니 김 씨는 고향 질문이 나오면 아예 "태어난 곳은 광주고 자란 곳은 부산이"다고 살아온 과정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 들어야 하는 다른 지역에 대한 일방적인 폄훼나 험담이 불편한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자리에 앉아있기 민망할 정도의 대략 난감인 상황은 일단 벗어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온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같이 내가 살아온 과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다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과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는 게 김씨의 푸념이다.

그래서 요즘 김씨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예 청개구리 화법으로 답한다. 예를 들어, 전라도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부산이 고향이라고 말하고, 경상도 사람과 만나면 광주가 고향이라 말하는 식이다. 그러면 최소한 상대 지역에 대한 험담을 듣는 일은 피할 수 있어서다. 물론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덧붙이는 글>
나는 경남서 태어나 전남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대학은 경북서 다녔다. 당연히 불알 친구는 모두 초중고 시절을 함께 한 이들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출생지가 다르다는 사실은 알게 모르게 친구들과의 사이에 모종의 거리감을 만든다. 그 역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다 저 독하디 독한 '지역감정'이란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내년이 대선이고 내후년이 총선이다. 지역주의 혹은 지역감정 이데올로기가 다시 만개할 철이다. 이곳저곳서 벌써 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 -_
2006/09/22 19:21 2006/09/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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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긱스 2006/09/22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비슷한 케이스네요~~(조금은 다르지만)
    저는 대전에서 태어나서 충북옥천, 경북달성으로 이사를 다닌후 어린시절 줄곧 전남 광양에서
    살았지요 그리고 대학은 경남 진주에서 나오구요~ 그리고 직장은 경남 하동에 있답니다.
    ㅎㅎㅎ

    • 하민혁 2006/09/26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렸을 적에 사투리 때문에 애 안 먹었는지 모르겠네요. 제 경우는 엄청 해맸거든요. 그 동네 억양이 워낙 억센 탓에.. ^^

  2. Ayas K 2006/09/23 1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경우는
    충북청원(출생) -> 서울 냉천동 -> 서울창신동 -> 서울충정로 -> 화천 ○○○부대 군인아파트(아버지가 당시 군의관이었으므로) -> 신탄진 -> 논산 -> 충북옥천에서 10년넘게살다

    지금은 이런저런이유로 춘천에서 1년반넘게 근신중입니다.

    • 하민혁 2006/09/26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나마 다행이네요.
      옮겨다닌 곳이 지역색 하고는 약간은 거리가 먼곳이니.. ^^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벌써 학교를 4번 옮겼습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곤혹스런 일 아니 당하게 하고싶었는데 말이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