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게시물에서 현 정권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쪽글로 이어졌다. 쪽글이 좀 길다싶어 새로운 글로 옮겨 적었다가, 쪽글의 한계로 인해 내용이 거칠었던 부분을 수정하여 다시 올린다. 어투는 여전히 다소 거칠다.  


제가 보기에 어려움은 거기서 비롯되는 게 아닌 것같아요. 지정학적인 요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고, 그게 지금 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거지요. 과거라고 해서 지정학적인 요인 자체가 사라진 적은 없었으니까.

지금 정부를 어렵게 하는 제일 원인은 정권 자체에 있다고 봅니다. 명확하지 못한 정체성이 문제지요. 현 정권은 일종의 '꼭두각시' 정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정권을 잡은 게 아니거든요.

지난 5.31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한나라당의 승리라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나라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지요. 지난 대선전도 마찬가지였어요. 변화의 시기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노무현을 선택했던 것 뿐이지요. 거기에 지금 노무현을 까대고 있는 '자칭' 진보세력의 전략적 선택이 큰 역할을 했던 거구요.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무시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이해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쌩까고 가는 건지는 몰라도, 암튼, 이 사람들은 권력을 잡게 되자 그것이 마치 자신의 힘으로 잡은 줄로 큰 착각을 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그래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주제임에도 그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채, 마치 자신이 무슨 대단한 혁명을 성공시킨 주체나 되는 듯이 행세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임시로 권력을 위탁한, 권력의 진짜 주체인 국민이 볼 때는 기도 안 차는 일이지요. 건건이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요. 전략적 지원을 했던 '자칭' 진보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거구요.

노무현 정부는 꼭두각시 정권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유시민이 그랬지요. 노무현을 평해달라는 말에 "노무현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이라고. 오늘 저 위에 옮긴 글에서 손석춘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어요. 수구언론에 놀아나는 '메수부수한' 노무현이라고 말이지요. 다시 말해 노무현은 이미 단단한 기득권에 둘러싸인 다른 인물에 비해 비교적 쉽고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된' 존재였을 뿐이었어요. 실제로도 노무현과 그 주변인은 자신이 주체인 적은 한번도 없었지요.

이같은 사실은 노무현 정부 3년을 되돌아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도 혁명은 초기에는 비교적 온건파가 전면에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곧 우군이던 래디칼한 사람들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지요. 뒤집어 엎는 혁명의 속성상 그럴 수밖에 없어요. 하물며 지난 대선전과 같은 '유사혁명'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어요? 래디칼한 쪽과 수구 양쪽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임시 정권, 즉 '꼭두각시 정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어요.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중간지대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양면 공격을 피할 수 없어요. 바로 노무현 정권이 패착하고 있는 지점이지요. 지금 노무현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난맥상이 시작되는 지점이구요.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정권 - 이게 노무현 정부의 가장 정확한 포지션입니다. 이 포지션에서 벗어나는 길은 딱 하나,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길인데.. 이들한테는 그럴 의사도 역량도 보이질 않아요. 그러니 이도 저도 아닌,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신자유주의 좌파라고 했다가 하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연출하게 되는 거지요.

한마디로 폼은 잡고 싶고, 그렇다고 해서 야당도 아닌 판에 폼만 잡고 있기는 그렇고 한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상황이 이러니 벌이는 판마다 '깽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것이 지금 노 정권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고, 현 상황에 지정학적인 요인 등을 끌어들이는 것 등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2006/07/21 13:01 2006/07/2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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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무능한 여당? 한나라는 유능한가" 라는 글을 읽고...

    Tracked from Hwoarang의 이야기 2006/07/21 13:45  삭제

    원문참조 : http://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47394&ar_seq=7 사실 원문 내용과는 좀 상반되는 내용이기도 하고.. 심하게 이야기 하면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 같기는 하지만... 나름대?

  2. Subject: 김대업, 노무현은 '도구'였다

    Tracked from 하민혁의 통신보안 2008/03/10 16:45  삭제

    지난 2002년 병풍사건의 주역 김대업씨가 드뎌 회한의 한 방을 날렸다. 다른 건 다 그 말이 그 말인 터라 접고.. 그의 한마디가 특히 눈에 박힌다. "노무현은 '도구'였다!" 바로 이 말이다. 김대업은 저 말을 전혀 다른 맥락에서 하고 있지만, 사실 저 말이 기본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바는 정확히 맞다. 그랬다. 노무현은 '도구'가 맞았다. 오죽했으면 '노무현의 남자' 혹은 '노무현의 경호실장'이라는 유시민까지 노무현을 가리켜 '엉겁결에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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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woarang 2006/07/21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 잘 보았습니다..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든 노무현정권이든 열린우리당이든 국민이 생각하는 관념과 상당히 괴리되어 보입니다.. ^^ 맞 트랙백 보냅니다... ^^

    • 하민혁 2006/07/22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민과 정부의 생각이 언제나 똑같을 수는 없겠지요. 식솔들 전부와 그 미래까지를 책임져야 하는 집안의 가장과 우선 당장은 자신의 일에 매진해야 하는 자녀의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문제는 분명한 방향성이고 실천력입니다.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거나 실천력은 없는 채 말로만 떠들게 되면 가장이고 정부고를 떠나 그 집안과 그 나라의 미래는 결코 밝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2. bluo 2006/07/23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가장 큰 문제는 현재 한국에 '대안'이 없는 게 아닐까합니다.
    개나 소나,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 판의 완전히 발칵 뒤집히지 않는한, 아니 그렇게 되더라도 달라지는 게 있을지요.
    '절망적'이라기 보다는 '전혀 희망이 없다'라고 할까요. 절망적이라면 그래도 쏫아날 구멍이 있을 터인데, 그 구멍마져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어이쿠.제 블로그가 차단되었네요^^;

    • 하민혁 2006/07/23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안'이 없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이 판이 완전히 발칵 뒤집혀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하구요. 그 일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내가 노무현이나 유시민에게 기꺼운 동의를 보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들불처럼 타오르던 '대안'의 가능성을 사사로운 이해 관계에 빠져 저버린 이들이라 보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희망을 버리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블로그가 차단되었다는 건 무슨 뜻인지요? 알려주세요.

  3. bluo 2006/07/24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페이지 주소란에 제 블로그 주소를 쓰면 차단된 뭐라고 나오면서 안써지던데 지금은 되네요^^;;;

    • 하민혁 2006/07/24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름다운 혼돈.. 블로그 이름이 인상적이네요. 홈페이지 내용도 특별하구요. 홈페이지 주소를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는 그게 어떤 홈페이지 주소도 쓸 수 없도록 필터링 되어 있어서 그랬습니다. 알려주신 덕분에 문제를 바로 잡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 )

  4. 지나가던이 2006/07/25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썼던 답글에 대한 글을 좀 손보셔서 하나의 글이 되었군요. 어째 제가 블로그에 글을 올린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 처음에 제가 답글을 쓸 때는 국내의 '양면공격'의 문제도 크지만 그 이상으로 주변나라들 눈치를 봐야하는 판국이 아닌가 해서 썼던 글입니다. 결국 님이 주로 쓰시는 표현대로 '제 할 탓'이며 능력의 문제이지만 차라리 국내적 결단의 문제로만 생각했다면 노통이 그리 주저주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죠. 그렇지만 하민혁님의 답글을 보니 그런 수준이 아닌 국내 내부의 문제에서 흔들리고 있고 그걸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의견으로 읽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답글에 '그렇다면 제 의견보다 더 암울한 상황이다'라고 쓴 거고요.

    그런데 저는 노무현 정부가 방향성을 상실했는가에 대해선 약간 이견이 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말을 했을지는 몰라도 굵직한 사안의 추구에 있어서는 노정권은 스스로 결정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미 FTA를 과제로 결정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 예라고 보겠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노무현식 개혁의 한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신자유주의 좌파'라는 단어는 개인적으로도 허접한 조어라고 생각합니다만(그다지 세련된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니 '한국식 제 3의 길'이란 조어는 생각못했는지도. 아니 도리어 말장난 한다는 얘길 들을까봐 기각?)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대충 감이 잡힙니다. 그래서 저는 노무현 정부가 스스로 선택한 자기정체성을 여러번 얘기했지만 모두로부터 싸늘한 반응만이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했다는게 허접했든
    자각하지 못한 꼭두각시의 생각이든 자기가 선택한건 맞으니까요. 그런면에서 전 노무현 정부가무능할지 몰라도 무지막지하게 무능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뱀다리 : 전 지방선거 결과에는 다른식으로 불만이 있습니다. 한날당이든 열우당이든 떠나 자기 지방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을 찍어 당선시키면 그만인 것이 지방선거가 아닐까 합니다. 지방분권이 꽤 이뤄진 지금은 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당의 호불호에 크게 좌우됐다고 보는 이번 선거가 마음에 안 든답니다. (무슨 표 많이 얻은 당에서 지방자체 단체장을 임명하는 방식도 아닌데 말이죠.. -_-;;)

    • 하민혁 2006/07/27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견 고맙습니다. 제대로 된 답글을 꼭 하나 쓰고싶은데 최근에 이런저런 일에 매달리다보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네요. 조만간 님의 의견에 대한 답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