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이현세씨가 '고졸'임을 밝힌(신문에서는 '고백'이라 전하고 있다. 젠장~)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다시금 예의 저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학생활을 하지 못한 사람은 국민이기조차도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풀 길 없는 울화(?!)에서 비롯되는 답답함이다.


만화가 이현세

<< 만화가 이현세 - 조선일보 기사사진 >>

'일상적 파시즘'을 말한 이(임지현)가 있었다. '권력이 강하다는 것은 억압과 강제보다는 동의의 기제에 의존할 때'라는 그람시의 테제에 기대어서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춘다. '일상적 파시즘'이 아직은 '시론적 차원'의 한계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된 답변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변이다.

나의 울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바로 '일상적 파시즘'에 대한 기막함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일상적 파시즘이 가장 공공연히 그리고 가장 노골적으로 자행되는 지점이 이른바 '386' 혹은 '386세대'라는 조어에 있다고 본다.

'386' 혹은 '386세대'라는 말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한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그래도 되는가? 다시말해 '386'이 한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

적어도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386세대'라는 조어에서 읽히는 것은 저 독하고 견고한 학력지상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세상에!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가 한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는 사회라니..

이같은 사회에 속한 사람은 대학을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공공의 적(이 되기십상)이다. 여기서는 아무리 기를 쓴다고 해도 괄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러므로 기껏 서포터로 기능하는 것 정도다. 이보다 더하게 학력을 조장하는 사례를 나는 이제껏 듣본 적이 없다.

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가? 이유는 하나다.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전파하는 이들이 괄호 안의 사람들, 곧 대학을 나온 사람들인 때문이다. '386세대'라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쓰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앞서 임지현이 일상적 파시즘을 말하고 있는 책의 타이틀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다. 당연한 말이지만(적어도 내가 보기에), 임지현이 적고 있는 그 '우리'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된 답변이 없기 때문"이라며 일상적 파시즘을 시론적 차원의 주장으로 바운다리 친 한계 지운 그의 본질적 한계라는 생각이다.  

학력지상주의, 학력만능주의를 치유 내지는 해소하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386' 조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알게모르게 생성되고 전파되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학력지상주의적 담론을 중지하는 일이다. 이 일이 당장 힘들다면 최소한 학력지상주의를 철폐하자는 주장 속에 감추어진 학력지상주의적 담론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일이 우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학력 부풀리기 행태에 대한 비판 혹은 비난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국민 일반이 결과를 익히 알고 있으면서 '짜고 치는 한 편의 사기극'일 뿐이다.



[덧] '독재'는 논리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타도될 수 있다. 그러나 '386세대'라는 이 바운다리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지 않는 한 결코 타도될 수 없다. 한번 '386'이 아니면 영원히 '386'일 수 없는 것이다. 독재를 무너뜨린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선 게 독재보다 더 견고한 '386'이라는 괴물(리바이어던)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식에 교묘하게 스며들어 일상을 조작하는 고도화된 권력 장치로서의 일상적 파시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까닭이다.




2007/07/23 20:26 2007/07/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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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2008/03/02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중한 트랙백 잘 받았습니다.
    평소에 제가 생각하던 바와 거의 일치하는군요. :)
    386이라는 오만한 표현 이제는 쓰이지 말아야겠죠.

    • 하민혁 2008/03/04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무의식적으로 '중산층'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링크 타고 자주 들러 좋은 글 챙겨 읽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