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당 사태, 시민참여정치의 수준과 가능성을 보여줄 시금석이다"
작성자 : 하민혁 등록일 : 2004.01.07 15:13:29
민노당이나 진중권에게 개혁당 문제에서 손 뗄 것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주문이다. 개혁당 사태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느냐에 따라 지금 이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 표출되고 있는 시민참여정치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시금석이자, 그 실체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시민들은 정치의 주체로 서기 위한 다양한 길을 모색해왔고 또한 다양한 행동들을 보여왔다. 유시민이 주도(!)한 개혁당의 출범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개혁당은 태동 단계에서부터 이미 그 주체와 방법을 두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당(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무현)의 '위성정당'이라는 한계와 '유시민'이라는 스타 체제가 갖는 전횡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혁당이 위성정당인가의 시비는 유시민이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발언을 통해 극복되었고, 개혁당이 과연 말 그대로의 '국민정당'인가의 시비 또한 봇물 터지듯 하는 시민참여 열기속에서 상향식 의사결정 방식의 집단지도체제라는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잠재워졌다.
하지만 결국 유시민이 말한 '백년 가는 정당'은 1년을 가지 못 했다. 상향식 의사결정 방식 또한 이번 사태를 통해 허구임을 드러냈다. 이에대해 유시민은 또 다시 화려한 수사를 통해 자신의 행태를 변명하고 나섰다. 유시민이 하는 모든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것은 단 하나다. "유시민이 곧 개혁이고 정의다. 그러므로 유시민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이 과연 개혁이고 정의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따질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민노당이나 진중권이 개혁당 사태에 나서서는 안된다는 말의 허구성이다. 개혁당 사태에의 불간섭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근거는 민노당이나 진중권이 과거 개혁당에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단세포적인 발상이다. 오히려 지금 개혁당 사태의 현주소가 바로 민노당이나 진중권 등이 했던 비판이 정당했다는 것의 반증이다. 그렇지 않은가?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던 유시민의 약속은 다른 누가 아니라 유시민 스스로가 저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빚어진 여러 아름답지 못한 행태들, 예컨대 당사 폐쇄 홈페이지 접근 차단 재산내역 비공개 도메인 분쟁 야기 등은, 진중권이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법적 제도적 문제를 떠나 도의적 윤리적인 책임이라는 측면에서도 있을 수 없는 폭거였다.
그리고 민노당이나 진중권의 비판은 과거나 지금이나 결국은 이에 대한 문제 제기였고 비판이었다. 그렇다면 유시민의 발언이 모두 허구로 드러난 지금 그 비판은 정당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지 그게 불간섭에 대한 이유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같은 정당한 비판을 구태의연한 '편들기'로 폄훼하려드는 것은 스스로의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더보기] 진중권, 두 개의 개혁당..
Name 진중권 (2004-01-08 01:46:38, Hit : 594, Vote : 30)
Subject 두 개의 개혁당-'가끔씩은'과 '권명진'
인간적 신뢰?
솔직히 나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대개 그 표현은 인간성 후진 이들이 논점을 벗어나 도망갈 때에 사용하는 오징어 먹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두 사람이 논쟁에 들어오면, 그건 '자신의 논리가 깨졌을 때에는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는 게임규칙에 합의를 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하지만 논점 흐리고 도망가는 사람들은 바로 이 합의를 깨는 것입니다.
그 합의를 깬다는 것은 곧 논쟁의 당사자들이 논쟁을 처음 시작할 때 서로 갖기로 전제했던 그 인간적 신뢰를 져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렇게 인간적 신뢰를 져버린 바로 그 사람들이 적반하장격으로 "인간적 신뢰"가 어쩌구 하며 먹물을 뿌리곤 하지요. 이런 사람들은 한 마디로 오징어 같은 사람들입니다. 느닷없이 "인간적 신뢰" 남발하는 사람들일 수록 인간성이 후진 경우가 참 많지요.
논리는 논리대로 따지고, 인간성은 인간성 대로 따지면 될 일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논쟁에서는 논리만 따지면 되고, 인간성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 관리하는 게 좋다는 입장입니다. 논쟁이 무슨 선인과 악인을 가리는 최후의 심판도 아니고, 인간들 중에서 성자를 뽑는 종교의식도 아니고, 왜 논리적인 문제를 논하다가 갑자기 논점이 윤리로 넘어가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하지만 인간성 논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죠. 그걸로 빌미로 논리를 피해가려고 할 때, 그때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대인논증의 오류'라고 하지요.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말하자면 윤리적 문제를 논하는 게 문제가 될 때에는 "인간적 신뢰" 어쩌구 하는 말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저는 이 낱말을 후자의 경우에 한정되어 사용하려고 합니다.
두 개의 개혁당
먼저 논리적인 문제부터 얘기하죠. 저 밑의 권명진이라는 분이 이상한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 분, 지금 우리당에 가 계시죠? 이 분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1) '진중권, 너는 과거에 개혁당을 그토록 비난했으면서 왜 이제와서 개혁당을 편드는 거냐.' 나아가서 이 분은 개혁당 일에 제가 관심을 갖는 것조차 기분 나빠합니다. (2). '진중권, 너 개혁당 일이 신경 꺼." 그리고는 개혁당 사람들에게 진중권이 저러는 음모를 경계해야 한다는 투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주 전형적인 오류논법이지요. 그 바탕에는 아주 교활한 책략이 깔려 있지요. 왜냐...? 개혁당에 대해서는 제가 가진 생각은 모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개혁당 자체가 모순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즉 (a) 개혁당의 참여 민주주의 실험은 대단히 긍정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b) 이 실험이 결국 노무현과 우리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놀고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입니다. 현재의 개혁당 사태는 개혁당에 원래 내재되어 있던 이 모순이 서로 갈라진 것에 불과합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과거에 진중권이 개혁당을 비판하는 논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개혁당이 가진 (a)참여 민주주의 실험을 비판했습니까? 아니면 (b) 어차피 노무현 품으로 달려갈 개혁당의 한계를 비판했습니까? 제 비판은 철저하게 (b)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때 제가 했던 모든 예측은 다 적중했습니다. 유시민이 결정할 거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마지 못해 추인해 줄 거다. 그리고 우르르 우리당/민주당으로 갈 것이다. 이게 틀린 예측인가요?
그때 권명진씨는 무엇을 옹호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a)를 명분으로 내세워 (b)의 측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거나, 내지는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지금은 노골적으로 (b)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개혁당은 사실상 두 개의 정당이었습니다. 3분의 1도 안 되는 사람들이 끝까지 참여 민주주의의 실험을 하려는 (a) 개혁당, 그리고 노무현 품으로 달려갈 날만 기다리는 3분의 2의 후로꾸 (b) 개혁당....
진중권은 (a) 개혁당에 대해서는 늘 호의를 표명해 왔고, (b) 개혁당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난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개혁당은 어떤 개혁당입니까? (b)는 자진해체되어 지금 우리당이 되어 있고, 남은 것은 해체를 강요받고 있는 (a) 개혁당입니다. 당연히 제가 이들의 편을 들어줄 수 밖에요. 여기서 저는 아무런 논리의 모순도 보지 못 합니다.
외려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은 바로 권명진씨입니다. 특히 '남의 당에 대한 관심을 끊으라', '개혁당에 대한 관심을 끊으라'고 할 때의 권명진씨는 대체 어떤 개혁당원입니까?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개혁당원은 우리당으로 가지 않고 남은 (a)개혁당원들 뿐입니다. 그런데 권명진씨가 과연 (a) 개혁당원입니까? 아니면 개혁당의 해체를 승인하라고 요구하는 사실상의 우리당원입니까? 제가 알고 있기로는 후자입니다. 아닌가요?
가끔씩은, 권명진
이제 논리적인 부분은 끝났고, 이제 "인간적 신뢰"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지요. 이 게시판에 들어와서 글 쓰는 분 중에 '가끔씩은' 님이 계시지요. 이 분은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르고, 그래서 가끔 의견이 충돌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는 종종 그 분의 글 밑에 "님은 진국입니다" 라고, 감탄의 글을 남기곤 했습니다. 그것은 당파를 떠나서 가끔씩은 님은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제 믿음의 표명이었지요.
이 분은 영원한 (a) 개혁당원입니다. 제가 그 분을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근거도 개혁당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애착과 애정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결국 해체되어 우리당으로 들어갈 것이 뻔한 데도 불구하고, 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 당이 엉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은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계속 개혁당의 정치실험에 대해 미련할(?) 정도로 미련과 애착을 놓치 않으시더군요. 당파를 떠나서 이런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안티조선의 정철호라는 분도 그래서 제가 매우 좋아히죠.)
자, 그럼 권명진 씨는 어떤가요? 이 분은 (b) 개혁당원, 이제는 스스로 실체를 없애버린 유령 개혁당원, 그리하여 사실상의 우리당원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내게 자기들이 해체를 추인한 그 당에 관심 갖는 것도 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언제부터 이 분이 지금 남은 (a)개혁당에 그토록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가요?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네요.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서 '인간적 신뢰'에 관해 굳이 한 마디 한다면, 솔직히 권명진님 같은 분, 저는 인간적으로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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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당 시절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루어 져야겠지요. 그러고 나서 신당에 대한 접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을 격으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다 완전한 유시민의 신당이 되길 기원합니다.
유시민이 개혁당을 만들 때의 명분은 '시민이 주체가 되는, 백년 가는 정당' 건설이었습니다. 유시민이 개혁당을 해산하고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명분은 '정당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민이 주체가 되는 백년 가는 정당'은 1~2년여를 넘기지 못했고, 정당혁명은 열린우리당의 공중분해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왜일까요? 유시민이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이후 보인 행태를 함 보지요.
정당혁명을 부르대던 유시민은 그가 그렇게 열망해마지 않은 정당혁명이 혁명은 고사하고 콩가루집안이 되는 모양새를 보이는 상황에서 장관으로 입각했습니다. 이게 시민의 열화와같은 성원에 힘입어 시민이 주체가 되는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자던, 시민들의 쌈짓돈을 모아 정당혁명을 이루자던 유시민이 해야 할 일이었을까요?
그런데, 이제 유시민이 다시 또 정당을 만든다구요? 이번에는 뭘 내세워서요?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그게 반 세기 넘게 이어온 정당혁명임에야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요. 시행착오,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행착오일 수 있으려면 먼저는 다른 무엇에 앞서 통절한 반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유시민이 이에 대한 반성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장관 타이틀을 밑천삼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말이지요.
이것이 님의 '유시민의 신당' 발언에 내가 기꺼이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