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우리 사회 이른바 '지도층'이라고 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인식 체계다. 안타까운 것은 이게 특정한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이건 마찬가지다. 상대를 향해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다가도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서면 희한한 특권의식으로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이것이 우리 사회 일반에 널리 그리고 깊게 뿌리박혀 있는 사회 의식이다. 그 자리에 올라선 누군가가 자기희생으로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개혁의 시작과 끝이 바로 이 지점이어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고, 못내 주변과 불화하는 까닭이다.
특권을 갖지 못했을 때는 입이 주디가 되도록 혁파를 부르대다가도 자신이 그 특권의 언저리에라도 이르게 되면 자기희생은 고사하고 오히려는 '우끼지도 않는' 특권의식으로 '완장질'을 하려 드는 넘들에게 나는 웃어줄 수가 없는 것이다(슬프게도 나는 완장을 찬 이후 자기희생하는 넘을 단 한 넘도 본 적이 없다. <통신보안>
/ 2006. 01. 02
p.s.
변절한 자들이 항용 부르대는 소리가 있다. 그러지 말라 이르면 돌아오는 답은 늘 똑같다. '융통성이 없다'거나 '고지식하게 왜 그러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개혁이나 혁명은 원칙의 문제고, 당위의 문제다. 융통성이 허용되는 지점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footnote]이런 말 하면 으레 '레닌의 전략 전술이 어쩌고~' 하면서 설래발 치는 자들이 있다. 정색 하고 덤비는 이 치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계 바늘을 몇 십 년은 거꾸로 돌려 세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는 짓을 보면 이 자들은 마치 어디 굴 속에라도 쳐박혀 지내느라 레닌의 동상이 광장에 거꾸러 넘어진 사실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정신 나간 넘들이다. [/footnote] 그럼에도 저들은 늘 원칙의 문제를 융통성이라는 처세의 문제로 치환하여 그 안으로 기꺼이 숨어들어버린다. 교묘히. 아주 덥게.
변절한 자들이 항용 부르대는 소리가 있다. 그러지 말라 이르면 돌아오는 답은 늘 똑같다. '융통성이 없다'거나 '고지식하게 왜 그러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개혁이나 혁명은 원칙의 문제고, 당위의 문제다. 융통성이 허용되는 지점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footnote]이런 말 하면 으레 '레닌의 전략 전술이 어쩌고~' 하면서 설래발 치는 자들이 있다. 정색 하고 덤비는 이 치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계 바늘을 몇 십 년은 거꾸로 돌려 세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는 짓을 보면 이 자들은 마치 어디 굴 속에라도 쳐박혀 지내느라 레닌의 동상이 광장에 거꾸러 넘어진 사실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정신 나간 넘들이다. [/footnote] 그럼에도 저들은 늘 원칙의 문제를 융통성이라는 처세의 문제로 치환하여 그 안으로 기꺼이 숨어들어버린다. 교묘히. 아주 덥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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