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과 언론개혁의 길


'꿈' 이야기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이 하나 있었다. 신문기자가 되고싶다는 꿈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신문사를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꿈이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그 일은 말 그대로 꿈이었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딱히 그래서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하여튼 그나마 현실성이 있는, 그리고 약간의 경험이 있는 출판사 일을 시작했다. 오래 가지는 못했다. 갑작스럽게 닥친 집안 일 때문이었다. 이후 7년 동안 남녘 끝자락에서 그 일에 매달려 지냈다. 지방생활은 답답하고 지루했다. 그때 만나게 된 것이 9600모뎀으로 접속하던 피씨통신이었다.

유배와 같은 답답한 생활 속에서 피씨통신의 플라자란은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유익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피씨통신이 유익한 공간으로 기능한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게시물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지만, 조회수에 목을 매는 ‘악다구니’로 플라자란은 이내 황폐해져버렸다. ‘악화가 양화를 밀어낸다’는 말의 의미를 이때처럼 절실하게 느껴본 적도 없었다.

인터넷을 만나다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1996년. 피씨통신에 비하면 인터넷은 그야말로 광대무변하고 자유한 공간이었다.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피씨통신의 악다구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오늘을 있게 한 인터넷 생활의 시작이었다.

한동안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를 돌아다녔다. 당시 국내의 인터넷 사이트 수는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홈페이지 계정도 거의(모두?) 국외에서 제공 받을 수 있었다. 나 역시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오시티 등에 무료계정을 통해 개인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넷과의 인연은, 이후 몇 단계를 거치면서 어린 시절 가졌던 저 신문사의 꿈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만들었다.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동안 그것은 여전히 꿈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몇 가지 사건이 겹쳐 일어났다. 그리고...

개인 홈페이지와 당시 활동하던 동호회 게시판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남겼다. 내 삶의 터닝포인트였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갈 수 없는 아쉬움에 그 자리에 서서
    한 길이 풀숲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어딘가에서
    나는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달라져버렸다고.


"가지 않은 길"은 '새로운 길'을 떠나면서 자신에게 던진 일종의 '화두'이자 '선언문'이었다. 곧 '대언론‘ 웹진을 만들었다. 신문사를 만들고 싶다는 꿈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당시 주변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과 처음 그 꿈을 있게 한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때를 전후하여 인터넷언론임을 주창하는 '대안언론'이 여럿 생겨났다. 하지만 우리는 '대안(代案)언론'이 아니라 '대(對)언론'임을 분명히 했다. ‘대안언론’이 되기에는 아직은 준비가 덜 된 탓도 있었고, '대(對)언론' 즉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역량이 부족하다 여긴 때문이었다.

'대(對)언론 웹진'에서 '인터넷신문'으로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대언론'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껴야 했다. '대언론'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생'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았다. '딴지성' 작업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감정적 카타르시스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그 일은 성향에 맞지를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그때 막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이었다. '안티조선'과 비슷한 성향의 '대언론'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안티조선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혹은 거기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티조선' 운동을 보면서 혹은 거기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대언론'의 한계를 직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터넷신문 NPC(Netizen Press Center)는 그렇게 인터넷에 둥지를 틀었다. 우리가 만든 인터넷신문은 '대안언론'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등과 똑같은 인터넷의 '언론'이고자 했다. 그것이 가능하리라 믿었고, 지금도 그 믿음에 변함이 없다.

인터넷신문 운영을 위해 IT회사를 설립하다

NPC를 대안언론이 아닌 바른 '언론'으로 만들겠다는 결정을 내린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신문과는 별개로 IT회사를 하나 설립한 일이었다. 자유한 언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금이 필요한데, 이것이 가능한 길은 우리가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는 일이었고, 이 일을 NPC의 이름으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설립하고 나서는 회사를 키우는 일에만 매달렸다. 사무실 한켠에 간이침대와 식사도구를 두고 '미쳤다'는 주위의 표현 그대로 일에 '미쳐서' 지냈다. 돌이켜 보면 힘든 시절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계절이 언제 바뀌는지도 몰랐고 명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공휴일은 아예 없었다. 그렇게 3년여를 보냈다.

어려운 고비도 여러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여기에 그 이름을 모두 적자면 몇 페이지로도 모자랄 정도의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다. 그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뜻한 바에도 어느 정도는 다다른 듯이 보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세상 일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회사에 잇따라 악재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외부적으로도 닷컴기업의 연쇄적인 몰락이 이어졌다. 걷잡을 수 없도록 상황은 악화되었고, 충분한 자금을 갖고 시작한 회사가 아니었던 탓에 금세 어려움에 처했다.

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애를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NPC에는 신경을 쓸 겨를조차도 없었다. NPC를 위해 설립한 회사에 NPC가 발목을 잡혀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2년 초, 그동안 운영해온 IT회사의 운영권을 포기해야 했다.

다시 시작했다. 어떻게든 NPC만은 바르게 세워야 했다. 이미 떨어져 나간 회사는 기억에서 지우고 NPC를 다시 세우기 위한 일에만 진력했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했고 참 많은 일을 했다. 그리고 NPC는 오늘 여기까지 왔다.  

네티즌과 일반시민의 힘으로 바른언론의 새장을 연다

언론이 문제라고들 한다. 언론 때문에 사회가 이 모양이라고 말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사회악 가운데 하나가 언론이라고 하면서 '전쟁'까지를 선포하는 지경이다. 언론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는 NPC 또한 기본적으로 인식을 같이 한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에서는 지금 언론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대통령을 포함하여)과는 그 인식과 접근을 달리 한다.

언론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가 없는 언론을 만들면 될 일이다. 너무도 분명하고 간단한 문제다. 언론의 문제가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국가의 안위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라면, 왜 문제가 없는 바람직한 언론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인가?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NPC는 그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싶었다.

NPC는 네티즌의 힘으로 새로운 언론의 장을 열고자 마련된 공간이다. '인터넷언론공화국' '네티즌언론공화국'이라는 NPC의 타이틀도 당시 네티즌들로부터 제안을 받고 추천을 받아 결정된 이름이다. 그러나 그동안 NPC는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지점에서 많은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위에서 밝힌 NPC의 역사 때문이다.

NPC는 그러나 지금까지 결코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없지 않았고, 또한 그런 기회가 없지도 않았으나, 바람직한 언론을 만들겠다는 처음의 원칙을 한번도 저버리지 않고 견지해왔다. 명망가 중심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시민의 힘으로, 네티즌의 힘으로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이 이루어진다고 하던가? 우리는 함께 바른언론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위의 글을 쓰고 나서 1년여가 흐른 지난 2004년 12월 31일, NPC는 결국 문을 닫았다. 2000년 1월 10일에 회사가 설립되었으니, 만 5년을 견디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내(우리가 아닌) 실험은 '실패'로 그 1막을 내린 셈이다.

2006/04/08 02:01 2006/04/08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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