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무현 당선자는 '바보'가 아니다

- “노 당선자, 국민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 레토릭으로 흥한 자, 레토릭으로 망한다.

2003-02-21 오후 9:43:49 / 하민혁  

인터넷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는 말들은 하나같이 살풍경하다. 내편 네편으로 편을 가르면서 인터넷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는 광신의 무리에게선 말 그대로의 광기마저 느껴진다.

정론은 찾아보기 힘든 반면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도록 가공된 비틀려 왜곡된 기사들만이 인터넷 가득 넘쳐난다.

당파성을 띠지 않은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는 주장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더할 수 있겠으며, 무슨 말을 한다 한들 그게 제대로 먹혀들 리가 있겠는가?

어느 인터넷신문 하나는 아예 '노무현 기관지'라는 애칭까지를 달고 다니는 주제에 말끝마다 죽어라고 '언론개혁'을 외쳐댄다.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하기사 장사하는 데는 정권을 끼고 하는 것 이상으로 돈 되는 장사도 없을 법 하다. 그러나 뭐든 지나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오직 자신의 주장만이 절대한 진리라고 외쳐댄 결과 인터넷에는 다른 쪽의 주장을 대변하는 인터넷신문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특정한 세력의 입맛에 맞추는 건 동일하되, 입맛을 맞추는 대상은 앞서의 신문과는 정 반대에 있는 신문들이다. 말이 신문이지 온갖 음모와 술수를 부추기는 장으로 기능하면서 특정한 세력의 이해를 뒷받침하는 프로파갠더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어느 '승냥이 새끼'의 울부짖음


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는 신문이라는 게 요모양 요꼴들이니, 그 사회가 실제로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을지는 굳이 살펴보지 않다도 알만 하다. 자나깨나 스스로가 '철학자'임을 입에 달고 다니는 어느 기자 하나는 아예 신문지면에 대고 '이놈 저놈 어쩌고..' 하는 '나발'까지 불어대고 있다. 더럽게 가도 참 너무 더럽게 가고 있다.




사실 뭐를 제대로 알고서나 그런 '나발'을 불어댄다면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썩을 놈'이고 간에 그게 무슨 큰 문제가 될까마는,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막말을 퍼붓는 이유라는 게 고작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내지르는 '괴성'에 다름 아니다. 이 어찌 더럽고 막가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이 자는, 그의 어법에 따르자면, 쇼맨십으로 먹고사는 무지한 '삐에로'일 뿐이다. 그렇지만 자칭 '철리'에까지 관심을 가진 철학자임을 애써 전하고 있으니, 그런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그가 쓴 표현 그대로 어느 '철없는 승냥이새끼'의 울부짖음 정도로 치부해두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런데 시정의 삐에로야 무슨 말을 지껄이건 그건 그야말로 어느 '철없는 승냥이 새끼'가 짖어대는 소리겠거니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대통령 당선자라는 사람이 비슷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면 이건 참 난감한 일이다.

'노비어천가'로 날을 지새는 어느 인터넷신문(나는 이게 왜 '인터넷신문'인지를 아직 모르겠다. 차라리 세간의 평가대로 그냥 '노무현 기관지'가 더 어울리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에 들렀다가, 에라 눈 배리겠다다 싶어서 최근 주가가 급등한다는, 그래서 가는 곳마다 링크가 걸려 있는 또다른 인터넷신문(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의 관계마냥이나 깊은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조선일보에서조차도 신문이 아닌 '웹진'으로 소개가 되더니 최근에는 '신문'으로 격상했는지 모르겠다)에 접속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첫눈에 들어오는 헤드라인 기사의 타이틀이 기가 막힌다. 한마디로 압권이다.


"노무현 정말 바보인가"




한번 보라. "노무현 정말 바보인가" 이게 헤드카피다. 참으로 죽이지 않는가?

노무현 당선자측의 '바보 노무현'이라는 레토릭을 정면으로 씹어버린 백만불 짜리 카피다. 이것은 백만불로도 결코 아깝지 않을 걸작이다(물론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거 보면서 괜히 인상 쓰시는 분 있다면 인상 그만 펴시라. 쓸데없는 데 인상 쓰면 오래 살지 못한다. 사소한 데 목숨 걸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노무현 당선자가 이 카피에 숨은 뜻을 모쪼록 가슴에 잘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레토릭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레토릭은 가급적이면 남발하지 않는 게 좋다. 레토릭의 가치는 그 사용 빈도에 반비례하는 때문이다. 레토릭은 과도하게 남발하다 보면 듣보는 사람을 식상하게 할 뿐더러 말하는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동안 노무현은 너무 많이 너무 자주 웃기잡는 레토릭을 구사해왔다.



'노비어천가'를 부르는 쪽에서야 그것을 애써 '노무현 화법'이라는 식으로 아전인수격인 변호를 해대고 있지만, 그러나 그런 억지스런 변이 언제까지 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부 광신도들에게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먹혀들 수도 있겠지만, 국민 일반이나 세계인이 그런 변에 박수 쳐주고 동의해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은 광야에서 짖어대는 승냥이 새끼가 아니라 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 사례들을 들어 이런저런 이야기할 시기도 이미 지났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당장 어제의 사례만을 봐도 노무현의 경망스러움은 도를 넘었다. 어제 노무현 당선자의 발언을 전하는 짧은 연합뉴스 기사 하나는 단락마다가 온통 (기자가 설명을 더한) 괄호 투성이다. 미루어 짐작해달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세살배기 어린애도 아닌 대통령 당선자의 발언 하나를 두고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이게 대체 뭐 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노무현은 사실 '바보'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철이 덜든 '천둥벌거숭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말과 행동들을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더 신빙성이 있는 걸로 보인다.
 

“레토릭으로 흥한 자, 레토릭으로 망한다.”




그래서 말인데, 노 당선자, 이제 '이미지 놀음'은 그만 했으면 한다. 이미지 아닌 정치가 어디 있으랴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밑천 드러나는 어설픈 광대 짓은 그만 하면 됐다. 그럴 시간 있거든 그 시간에 차라리 내실을 가다듬는 데 힘을 쓰도록 하시라. 

언제까지 일부 광신도의 추임새에 놀아나는 광대짓을 계속하려 하는가? 대체 언제까지 저 웃기잡는 광신무에 자신을 맡기려 하는가? 그 어줍잖은 이미지 놀음이 언제까지나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10여일 후면 노무현 당선자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 "레토릭으로 흥한 자, 레토릭으로 망한다." 나는 대통령 노무현이 이 격언으로 남게 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는 이딴 거나 만들 궁리하면서 지내다가 어느 순간, "당신! 대통령이야? 나도 대통령이다. 맞짱 한번 뜨까? 국민이 대통령이라며? 뭐가 문제야?"  하면서 들이댈 국민 없으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노무현 당선자,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시라. 그리고 진중 좀 하시라.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도무지 위태위태 하고 불안스러워서 못 봐주겠다. 쯧~



2003-02-21 오후 9:43:49  



<덧붙이는 글>
생뚱맞은 글이다. 느닷없이 3년 전의 글이라니.. 확실히 생뚱맞다. 사정은 이렇다. 오늘은 종일 바빴다. 다들 그렇겠지만 월요일은 원래 좀 정신없는 날인데다, 예정에 없던 눈치없는 월요일 손님이 있어서 더 그랬다. 얼마 전에 잃어버린(정확히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기억에 없다) 지갑 건도 나를 예민하게 했다. 아름답지 않은 일로 동사무소나 파출소 갈 형편이 못 되는 터라 곧 있을 지방 출장 건에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런 중에 "나라 안 망한다"는 노 대통령 발언 기사를 봤다. 이제는 거의 이골이 난 터라 그러려니 했다. 이번에는 "노 대통령 말, 미 행정부 자극 한·미 관계에 깊은 스트레스" (새 창으로 열기)라는 기사를 봤다. 몇년 전에 쓴 글이 생각났고 그래서 찾아 올린 게 이 글이다. 중앙일보가 어쩌고.. 미국 부시 니는 더 하잖아.. 하는 말에도 이제 질렸다. 잘못 된 건 잘못된 거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천둥벌거숭이다. 그것도 좋지않은 의미에서의. 제멋에 겨워 사는 것도 좋지만 이미 선을 넘었다. 철 들 때도 되었다. 계속 천둥벌거숭이 같은 짓을 하면 누군가는 나서 철이 들게 해줘야 한다. 안 되겠다. 그만하자. 오늘은 이야기 더 하다가는 아무래도 사고 치겠다.     

2009/04/11 11:41 2009/04/1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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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동 2006/08/15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주통신'이 뭣하는 곳인가 싶어서 가봤더니, 하민혁씨가 그렇게 비판해마지않던 특정 이념에 충실한 대표적인 두 개의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독립신문' 못지않은 이인제 기관지군요. 하기사 장기표씨 칼럼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걸 보면, 꼭 이인제씨 기관지는 아닐 수도 있겠군요. 아무튼, '민주'라는 걸 간판으로 내걸었기에 혹했더니만, 별게 아니네요.
    뭐.. 하민혁씨, 생각은 자기 자유니까, 자신은 스스로 모마이뉴스, 독립신문과 다르게 아주 고고한 민주통신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이인제 기관지라는 얘기를 듣거나 말거나겠죠. 수고하쇼~

    • 하민혁 2006/08/22 0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만 보면 '민주'라는 말에 경기 일으키는 사람들 많아요. ^^

      민주, 그거 별 거 아녀요.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이 다입니다. 근데, 거기다가 무슨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는 스스로가 그 노예가 버린 사람들이 있어요. 민주를 주인으로 섬기는 한마디로 민주를 들먹일 자격조차 없는 웃기잡는 사람들이지요.

      실제로도 민주라는 말에 혹해서는 무슨 투사입네 하는 친구들 보면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머저리같은지 모르겠어요. 시대를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쩝~

    • 미령 2009/04/11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투사는 아니더라도 패배주의자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들은 아니죠.
      민주 그 별게 아닌게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그런사람들이 생기죠.

  2. asdf 2007/09/05 0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오... 블로그 주소 하나 없이 하드한 의견을 제시하고 가는 분이 있긴 있군요.
    기본적 예의 지키고 사는 사회는 언제쯤 오려는지...

    • 하민혁 2009/04/13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화통하게 까고 얘기하면 좀 좋을까요? 피치못할 사정이 없다면 말이지요. ^^

      <덧> 우와, 댓글 다 달았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3. bao 2009/04/12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 인터넷신문은 보수쪽이 훨씬 더 많습니다. 프리존, 데일리안, 업코리아, 데일리엔케이, 독립신문, 아우어뉴스, 투데이포커스, 투데이코리아, 프런티어타임즈... 등등. 거기다 미교포들의 인터넷신문과 개신교 교회쪽의 인터넷미디어까지 합하면 정말 많습니다.

    진보쪽은 끽해야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중의소리 정도 되겠군요. 쪽수나 영향력을 저울질 해본다면 어느쪽이 더 클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지요.

    좀 애매하게 쓰셨는데, 혹시 잘못 알고 계신 듯해서 노파심에 추가합니다.

    • 하민혁 2009/04/12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 말씀하신 인터넷신문들, 독립신문 하나 빼놓고는 모두 이 글 쓴 이후에 나온 곳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구요.

      "오직 자신의 주장만이 절대한 진리라고 외쳐댄 결과 인터넷에는 다른 쪽의 주장을 대변하는 인터넷신문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특정한 세력의 입맛에 맞추는 건 동일하되, 입맛을 맞추는 대상은 앞서의 신문과는 정 반대에 있는 신문들이다. 말이 신문이지 온갖 음모와 술수를 부추기는 장으로 기능하면서 특정한 세력의 이해를 뒷받침하는 프로파갠더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 bao 2009/04/12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3년을 기점으로 본다면 제대로 구색을 갖춘 인터넷신문은 오마이뉴스 한곳 뿐이군요.

    • 하민혁 2009/04/12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오님/ 구색을 제대로 갖춘 건 맞는데, 언론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마이뉴스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정치언론 내지는 언론정치로 언론 일반을 후퇴시켜버렸지요.

    • bao 2009/04/12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문방송학에서 오마이뉴스는 학술적으로 매우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오마이뉴스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죠. 일본과 미국 등에서 벤치마킹 시도가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극히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매체입니다. 언론 일반을 후퇴시켜놓았다고만은 볼 수 없지요.

    • 하민혁 2009/04/13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마이뉴스는 앞으로도 매우 주요하게 다루어질 겁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부정적인 부분, 다시말해 오마이뉴스가 언론일반에 끼친 폐해에 대한 부분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덧> 이것 가지고 또 왜 그렇냐고 뭐라 하면서 댓글 달 거같아서 미리 한마디 해둔다면, 그거 갖고 내가 님과 가타부타 따지고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 님은 그냥 님의 생각이 옳타꾸나 여기고 그렇게 사시길 바랍니다. 얘기 더 해봐야 내게서 다른 뾰족한 얘기 더 안 나올 거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