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하나와 어딘가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시외버스를 기다리다가 며칠 전에 타박상을 입은 곳이 있어 근처 약방엘 들렀다. 호주머니에는 1만원짜리 몇 장과 1천원짜리 2장이 있었다. 얼마냐고 물으면서, 늘 하던대로 1만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2천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침 내게 2천원이 있으니 그걸 주마 하고는 2천원을 다시 건넸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나는 방금 전에 건넨 1만원을 당연히 돌려주겠거니 하고 기다리는데, 약사는 도무지 돈 돌려줄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돈 돌려줘야죠? 하는 말이 목구멍을 간지럽히지만, 이게 또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게다가 큰 돈도 아닌 1만원을 가지고 그걸 말한다는 게 심히 쪼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냥 갈까 하다가 혹시 약사가 잊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어이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내심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무슨 소리냐면서, 자신은 2천원을 받았을 뿐, 1만원은 받은 적이 없단다. 황당했다. 약사가 1만원권을 받아넣은 캐시함을 가리키며 방금 받아서 저기 넣지 않았느냐고 해도 그건 그 돈이 아니란다. 거기 내가 준 1만원권이 방금 건넨 2천원 아래 그대로 보이는데도.. 저 1만원권이 아까 내가 건넨 돈 아니냐고 해도 약사의 대답은 마찬가지다.

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황을 두고 속을 끓이는 사이, 밖에서 후배가 부른다. 버스 왔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재수가 없었거니 하고 그냥 버스를 타야 할까?
아니면 경위를 따져 기어이 1만원을 받아가야 할까?





<덧붙이는 글>
내가 생각한 답은 '버스를 타고 그냥 간다'이다. 답이 나오지 않는 일로 부대낀다는 건 얼마나 피곤한 일이겠는가? 문제는.. 내가 그 답에 충실하지 못 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꿈속 상황이긴 하지만, 그걸 굳이 따지려 들었으니.. 내 성마름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에니웨이, 이같은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내 성마름에 대한 일종의 제어장치겠거니싶다. <통신보안>
2006/04/06 18:08 2006/04/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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